[소치올림픽 우리도 뛴다] (2) 여자 컬링
입력 2014-01-09 02:33
역경 속 세계 4강 부상… “첫 메달로 보답”
아무도 예상 못한 기적의 드라마였다. 여자 컬링 대표팀이 2012년 3월 캐나다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 4강 신화를 달성하자 체육계가 술렁였다. 훈련비가 부족해 소모성 장비도 재활용하고, 훈련장이 없어 쇼트트랙이나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들의 눈칫밥을 먹던 선수들이 해낸 성과라고는 믿기지 않았다. 그토록 푸대접 받던 컬링이 올해 소치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넘보고 있다. 각본 없는 드라마를 쓸 주인공은 경기도청 여자컬링의 신미성(35), 엄민지(22), 김지선(26), 이슬비(25), 김은지(23) 선수다.
“컬링은 내 인생의 동반자이자 꿈을 이루고 싶게 하는 원동력입니다. 힐링 스포츠죠.”
팀의 버팀목이자 한국여자컬링선수 중 가장 오랜 경력을 지닌 신미성은 성신여대 재학시절 나가노동계올림픽을 보고 컬링 동아리를 찾았다. 올해로 컬링과 인연을 맺은 지 16년째다. 팀의 막내인 엄민지는 초등학교 때 컬링을 투포환인줄 알고 잘못 찾아갔다가 컬링 브러시를 잡았다.
주장 김지선과 김은지는 중학교 때까지 스피드스케이팅 선수였다. 고교 들어가서 컬링으로 전환했다. 김지선은 목표가 올림픽 금메달 이라고 입버릇처럼 얘기한다.
“컬링을 하다보면 또 다른 자신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는 이슬비는 중학시절 운동신경이 탁월해 체육교사에게 발탁됐다.
이들은 2009년 처음 만났다. 정영섭(56) 감독이 이들을 불러 모았다. 당시 선수들은 컬링을 포기하고 각자 생업을 찾아 뿔뿔이 흩어져 있었다. 다시 컬링을 잡고 감을 익히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2010년 퍼시픽아시아 컬링대회 1위, 2011년 뉴질랜드 환태평양 윈터게임 1위, 2012년 세계여자컬링선수권대회 4위를 일궈내며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열악한 한국 컬링의 현실에서 이들이 이룬 성과는 말 그대로 기적이다. 전용 경기장도 태릉과 경북의성훈련장 단 2곳뿐이다. 등록선수 숫자도 600여명으로 컬링이 국기인 캐나다의 등록선수 200만명과 비교하면 0.0003%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 전지훈련 땐 민박집에서 밥도 직접 해먹고 외국팀이 한번 쓰고 버린 브러시를 재활용하기도 했다.
그런 고난은 이제 다 지난 얘기다. 눈부신 성과에 기업들이 후원자로 나서면서 눈치보지 않고 훈련에 매진할 수 있게 됐다. 대표팀은 소치동계올림픽에 대비해 일본, 중국, 캐나다를 돌며 해외 전지훈련을 했다. 오전 10시부터 훈련을 시작해 식사시간을 제외하고 8시간 가까이 링크장에서 살았다. 이들은 땀방울은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말을 믿는다. 그들이 흘린 땀은 좋은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11월 아시아태평양 컬링선수권대회에서 정상에 섰고, 12월 제26회 동계유니버시아드에서도 은메달을 땄다. 이들은 가족도 잠시 뒤로한 채 올림픽에 올인해왔다. 컬링 유학 중 만난 중국 컬링 대표선수 쉬샤오밍과 지난해 5월 결혼한 김지선은 신혼여행을 올림픽 이후로 미뤘다. 지난해 2월 첫 딸을 얻은 신미성은 휴대전화 영상으로 딸을 만난다.
9개 팀이 참가하는 소치동계올림픽은 리그전을 치른 후 4팀이 토너먼트를 통해 메달을 가린다. 스위스, 스웨덴, 영국, 캐나다가 4강으로 꼽힌다. 2, 3차전으로 예정된 스위스, 스웨덴 중 한 팀을 꺾으면 토너먼트에 진출할 수 있을 전망이다.
윤중식 기자 yunj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