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박병권] 장외법정
입력 2014-01-09 02:13
재판의 목적은 실체적 진실을 밝혀 시시비비를 명확하게 가려내는 것이다. 따라서 민사나 형사 등 재판의 종류를 불문하고 관련 당사자의 만족이 가장 중요한 요소다. 민사의 경우에는 소를 제기한 당사자인 원고와 상대방인 피고가 모두 결과를 수긍해야 훌륭한 판결이다. 마찬가지로 피고인이 죗값에 해당하는 형을 받았다고 진심으로 받아들여야 좋은 형사재판이다.
그렇지만 사건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기록만 수만 페이지에 달하는 경우 당사자와 변호인이 공개된 법정에서 충분히 입장을 펼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 이용되는 것이 이른바 장외법정(場外法廷)이다. 물론 법률에 규정돼 있지는 않다. 우리 법은 재판의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해 공개재판주의를 원칙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외법정은 대구에서 주로 행해졌다. 사건은 많은데 일일이 원고와 피고의 진술을 제대로 들을 수 없어 재판부의 심증이 굳어지지 않을 경우 이용됐다. 방식은 간단하다. 특정한 날에 원고 측 대리인과 피고 측 대리인이 법정이 아닌 판사 집무실에서 만나 서로의 주장을 피력하는 것이다. 민사사건의 경우 소를 취하하거나 조정을 하는 방안도 고려될 수 있어 유용한 방식이다.
장외법정이 이 지역에서 발달된 이유가 있다. 지금은 서울과 4개 광역시에 예외 없이 고등법원이 있지만 예전에는 3곳에만 있었다. 특히 부산의 경우 1987년 9월 고등법원이 개원하기 전까지 항소심 재판을 받기 위해서는 대구까지 가야만 했다. 대구는 특이하게도 정부수립 직후인 49년부터 고등법원이 존재했다. 자연스럽게 법률 수요가 대구에 집중됐다.
사건이 몰려 시간에 쫓기다보니 공개된 법정에서 서로 충분한 공방을 통해 자신들의 주장을 펴지 못했다. 장외법정이 생겨난 이유 가운데 하나다. 신기하게도 장외법정이 선 대구지역에서는 법조 브로커나 법조 비리로 구설에 오르는 경우가 드물었다. 사건 수임 방식의 전통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브로커가 들어설 공간이 없어서일 것이다.
최근 변호사 수가 급속히 늘어 1만명을 넘어선지 오래됐지만 사무실 임대료조차 내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변호사가 증가하는 만큼 사건이 많지 않아 개업 대신 공무원 등 다른 분야에서 일하는 경우도 많다. 변호사 자격증이 인생의 성공을 보장하던 시대는 지났다는 의미다. 무료로 변호사를 소개하는 인터넷 사이트를 운영키로 한 서울지방변호사회의 방침도 여기에서 비롯됐다.
박병권 논설위원 bk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