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가정이 무너진다] 치매 아내 16년째 집에서 돌보는 86세 이영태씨

입력 2014-01-08 02:38


“힘든 점, 수백 가지도 넘어요”

“힘든 점은 말도 못하죠. 수백 가지도 넘어요. 그렇지만 끝까지 아내를 포기할 생각은 없습니다.”

이영태(86·사진)씨는 1998년부터 혈관성치매를 앓고 있는 아내 윤연순(83)씨를 16년째 간병 중이다. 그는 치매를 가정까지 함께 무너뜨리는 무서운 병이라고 했다.

초등학교 교장을 지낸 이씨는 스스로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했다. 93년 정년퇴임 후 아내와 여행도 다니며 여유로운 노년을 보낼 계획이었다. 하지만 퇴임 5년 만에 아내가 치매 진단을 받았다. 이씨는 7일 “조금 편한 곳에서 지내게 해주고 싶어 아파트로 이사했던 96년부터 아내에게 치매 증상이 나타난 것 같다”고 말했다.

아내는 가장 최근 기억부터 조금씩 잃어갔지만 처음엔 치매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대회에서 입상할 정도로 서예 실력이 좋았던 아내여서 치매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이씨는 아내를 간병하며 매일 기록을 남겼다. 그 기록이 A4 용지로 5만장이 넘었다. 그중 일부를 모아 지난해 5월 ‘잃어버린 세월 그리고 기다리는 세월’이라는 책을 펴냈다.

이씨는 “96년에 치매가 아닐까 의심하지 않았던 게 제일 후회된다”며 “가족 중 치매에 걸린 사람이 있다는 걸 쉬쉬하고 감추는 당시 분위기 탓도 있었지만 아내가 아픈 걸 미리 알아채지 못해 너무 미안하다”고 말했다.

설상가상 아내는 2004년 7월 뇌졸중으로 쓰러지면서 척추장애가 생겼다. 이후 이씨는 하루 종일 집에서 혼자 아내를 돌보고 있다. 욕창에 걸리지 않도록 정기적으로 자세를 바꿔주는 게 가장 큰 일과다. 변비에 걸리지 않게 챙기는 일 역시 중요하다. 배변이 힘들어지면 병원 신세를 져야 한다.

이 때문에 이씨는 복부 마사지와 온수 찜질을 매일 해주고 식사도 소화가 잘되는 채소나 과일 등 60여 가지를 혼합해 준비한다. 영양실조를 막기 위해 몸에 좋다는 건 다 넣는다. 잠깐이라도 아내 옆을 비우는 일은 상상하기 어렵다.

초등학교 교장까지 지내 알고 지내는 사람이 많았던 그다. 그러나 “이제는 연락하는 친구가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오랜 간병에 친구들을 만날 여력이 없어 그렇게 됐다. 3년 전부터 아내가 아무런 말도 못하게 되면서 이씨는 더욱 외로워졌다. 대화조차 나눌 수 없게 되던 날을 이씨는 간병을 시작한 이후 가장 슬펐던 날 중 하루로 기억하고 있다.

그룹 슈퍼주니어 멤버의 아버지가 치매 부모를 돌보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접한 이씨는 “간병하는 사람은 치매 환자와 같이 우울증을 겪는 등 무척 힘들기 때문에 충분히 안 좋은 생각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씨는 “오랜 간병으로 잃은 것만 있는 건 아니다”고 말했다. 치매간병 수기를 포함해 16년 동안 책을 12권이나 준비했을 정도로 부지런히 살았다. 현재 시중에 나온 건 3권이다. 간병을 하며 정치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떠오를 때마다 써둔 글을 모아 책을 낼 생각도 있다고 했다.

박요진 기자 tru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