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정치권 “교황 사회정의 배우자”

입력 2014-01-08 01:52

지난해 말 휴가를 떠나기 전 미국 상원의 민주당 의원들은 비공개회의를 가졌다. 2014년 새해에 집중 추진할 ‘정치 의제’를 결정하기 위해서였다. 이 자리에서 해리 리드(네바다) 상원 원내대표는 소득불평등 해소를 내세울 것을 동료들에게 촉구했다. 그러자 무소속이면서도 민주당과 정치적 의견을 같이하는 버나드 샌더스(버몬트) 의원이 “이 주제에 관한 한 우리는 강력한 우군이 있다. 그는 교황이다”라고 외쳤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때부터 모임이 종교적 색채를 띠기 시작했다고 6일(현지시간) 전했다. 유대교 신자인 샌더스 의원이 모르몬교도인 리드 대표에게 교황의 이름을 언급하는 것을 보고 그 방에 모인 천주교도 의원들은 속으로 환호했다는 것이다.

NYT는 이날 ‘의사당에 울리는 교황의 목소리’ 기사에서 불평등 해소, 사회적 약자 보호 등 진보적 발언으로 큰 관심을 모으고 있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미 정치권에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면서 이 일화를 예로 들었다.

여야를 막론하고 불평등 해소 관련 발언 등으로 인기와 관심을 끌고 있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부상을 의식해 사회정의 화두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올해가 린든 존슨 대통령이 ‘빈곤과의 전쟁’ 연설을 한 지 50주년이 된다는 것과 맞물려 미 정치권의 사회정의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민주당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발언을 무기삼아 최저임금을 올리고 실업급여를 인상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민주당 인사들의 연설 내용에는 프란치스코 교황 발언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공화당 역시 푸드 스탬프(저소득층 무상 식권)와 실업수당을 줄이자는 입장이면서도 사회정의에 무관심하지 않다는 점을 부각시키려 애쓰고 있다.

밋 롬니 전 공화당 대선후보의 부통령 러닝메이트였던 폴 라이언 하원의원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빈곤과의 전쟁에서 새로운 생명을 불러일으켰다”고 치켜세웠다. CNN방송에서 ‘크로스파이어’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뉴트 깅리치 전 공화당 하원의장 역시 자신의 프로그램에서 빈곤 문제를 더 다루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크게 보면 교황의 진보적 성향은 민주당에 천주교인 투표자들에게 접근할 수 있는 새로운 동력을 제공하고 있다는 게 NYT의 분석이다.

하지만 여전히 일부 천주교도 민주당 의원들은 종교지도자를 ‘이용’하는 것을 내켜 하지 않는 경향이 강하다. 조 다널리(인디애나) 민주당 상원의원은 NYT와의 인터뷰에서 “교황은 공화당이나 민주당 어느 쪽을 지지하는 게 아니다. 단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라며 “나는 교황에 대해 그리 많이 얘기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워싱턴=배병우 특파원 bwb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