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학대 이젠 그만… 가짜 모피로 진짜 멋 내세요
입력 2014-01-08 01:36
진짜와 가짜. 진짜 앞에서 가짜는 맥을 못 추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 진짜와 가짜의 관계가 올겨울 패션에선 역전현상을 보이고 있다. 올해 패션에선 멋을 아는 사람들, 소위 ‘패션 피플’들이 진짜보다 가짜의 가치를 더 인정하고,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래전부터 “동물을 입는 것보단 안아주는 것이 더 따뜻하다”며 가짜 모피 패션을 지지해 온 ‘원조 섹시 디바’ 이효리를 비롯한 연예인들이 인조 모피와 인조 가죽 옷을 자랑스럽게 입고 있다. 2PM의 준호는 최근 자신의 트위터에 “요즘 입는 코트는 인조 털로 아는 분이 제작해주신 건데 따뜻해요. 누가 봐도 모피는 아니니 오해 말기”라는 글과 함께 사진을 게재했다. 누리꾼들은 이들에게 박수를 보내며 ‘개념 연예인’으로 칭찬하고 있다. 반면, 해외 공연을 위해 공항에 진짜 모피를 입고 나타난 장근석에게는 “인간은 어디까지 잔인할 수 있는지…. 공인이라면 좀 생각을 갖고 행동했음 좋겠네요” 등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고 있다.
더 이상 진짜를 흉내 낸 가짜가 아니라 유명인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인조 모피와 인조 가죽 등은 ‘비건(vegan) 패션’이란 이름도 얻었다. 비건은 유제품이나 계란도 먹지 않는 절대적인 채식주의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비건 패션은 동물 학대를 하지 않고 얻어낸 원재료, 즉 비동물성 재료만으로 제작한 의류로 올겨울 유행경향으로 제시되고 있다. 비건 패션의 대표주자인 인조 모피도 진짜인 것처럼 보이는 가짜 털이라는 ‘페이크 퍼(Fake fur)’, 가짜 모피라는 ‘포 퍼(Faux fur)’에서 환경을 생각하는 모피인 ‘에코 퍼(Eco fur)’, 재미있는 모피라는 뜻의 ‘펀 퍼(Fun fur)’, 최고급 모조 모피인 ‘하이 포(High faux)’로 대접받고 있다.
동물사랑실천협회 박소연 대표는 “고통의 결과물인 모피를 우리가 반드시 입어야 할 필요가 있는가”라고 반문한다. 품질 좋은 모피를 얻기 위해 동물이 살아 있을 때 가죽을 벗긴다. 앙고라는 긴 털을 얻기 위해 토끼털을 깎는 대신 뽑는다. 보들보들한 촉감과 고급스러운 광택으로 사랑받는 실크도 실이 끊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누에를 산 채로 쪄낸다. 올겨울 최고인기상품으로 등극한 다운이나 구스 패딩 속에 들어있는 털도 살아있는 오리나 거위의 털을 잔인하게 뽑은 것들이다.
TV 등 매체를 통해 가죽과 털을 얻기 위해 동물을 잔인하게 죽이거나 다루는 현장을 접한 일반인들도 비건 패션 애호자로 나서고 있다. 올해부터 비건 패션을 입기로 했다는 패션 블로거 전미주(32·블로거명 제이미)씨는 “실제로 입어보니 가볍고 따뜻하고 손질도 쉬워 정말 좋다”면서 엄지손가락을 세웠다.
오픈 마켓 11번가 김보라 여성의류팀장은 “올겨울 들어 인조 모피 다지인과 컬러가 매우 다양해지면서 매출도 부쩍 늘고 있다”고 전했다.
모피에 이어 지난해 12월부터 앙고라 제품 생산도 중단한 글로벌 SPA 브랜드 H&M 정해진 홍보팀장은 “진짜 모피의 장점으로 보온과 아름다운 결 등을 꼽는데 인조 모피도 보온력과 결에서 결코 뒤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색상은 인조 모피가 염색이 잘 돼 오히려 더 화려하고, 재단과 봉제가 쉬워 디자인도 더욱 멋지다”고 덧붙였다. 인조 모피는 물빨래도 가능하다. 가격은 진짜 모피의 10분의 1 수준으로 저렴하다. 인조 가죽도 마찬가지다.
동물보호시민단체 KARA 대표로 활동하고 있는 임순례 영화감독은 지난해 말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가죽도 인조 가죽이 많이 생산되고, 다운도 대체할 수 있는 신소재가 있다”면서 비동물성 원단인 대안 소재를 사용해달라고 호소했다.
모피나 가죽은 인조 모피 인조 가죽, 다운은 프리마로프트(PrimaLoft) 등 신소재, 실크는 텐셀 등이 대신할 수 있다. 개념 있는 멋쟁이가 되고 싶다면 지금부터 비건 패션을 입으시라.
김혜림 선임기자 ms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