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코너-정원교] 그때 우리 조상은 뭘 했나
입력 2014-01-08 01:32
“오늘의 중국은 이미 120년 전 중국이 아니다.”
화춘잉(華春瑩)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해 마지막 날 정례 기자회견 말미에 이렇게 말했다. ‘갑오전쟁 120주년이 되는 2014년을 앞두고 중·일 관계의 미래를 전망해 달라’는 기자의 요청에 대한 답이었다. 그러면서 ‘이사위감 면향미래(以史爲鑒 面向未來)’라고 했다. ‘역사를 거울삼아 미래로 향한다’는 뜻이다. 중국은 청일전쟁을 갑오전쟁이라 부른다.
청일전쟁 발발로부터 육십갑자가 두 번 지나간 지금, 동북아가 혼돈 국면을 보이는 게 당시와 아주 흡사하다. G2를 말하면서 ‘신형대국관계’를 미국에 요구하는 중국,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나아가고 있는 일본, ‘재균형’을 앞세워 아시아로 회귀하는 미국. 120년 전 한반도를 둘러싸고 각축을 벌인 나라가 청·일·러였다면 지금은 주로 미·중·일이라는 게 달라진 상황이다. 조선이라는 단일 국가에서 남북으로 갈라진 한반도, 쇠락의 길을 걸었던 청나라에서 미국에 맞서게 된 중국도 그때와는 다른 모습이다.
중·일 간 가열되고 있는 갈등도 예사롭지 않다.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둘러싼 영토분쟁,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추구, 중국의 동중국해 방공식별구역 선포,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로 이어진 상황은 동북아를 불안하게 만드는 또 다른 요인이 되고 있다.
일본은 신사 참배를 놓고 한국과 중국의 강한 반발에다 미국의 충고까지 이어지는데도 기존 입장에서 물러서지 않는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일본 입장을 버리면서까지 한국·중국과 정상회담을 할 필요는 없다”고 하더니 아베 총리는 연두기자회견에서 “신사 참배 진의를 설명하고 싶다”면서 합리화에 급급한 태도다.
중국 내 일본 문제 권위자로 꼽히는 류장융(劉江永) 칭화대 교수는 “아베의 군국주의 회귀 행보가 바뀌지는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중국 내 다른 국제관계 전문가들은 “아베 정권이 극우로 치닫다가 단명할 가능성도 있다”고 기대 섞인 진단을 내놓기도 했다.
학교 다닐 적 ‘1894 동·청·갑’을 되뇌면서 ‘못난 조상’을 탓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나 자신이 조상 세대에 끼게 됐다. 제국주의 열강이 한반도에 군침을 흘리던 1894년 당시 동학혁명, 청일전쟁, 갑오개혁이 숨가쁘게 이어졌던 역사를 공부하면서 탄식을 거듭했던 기억이 새롭다.
수탈과 학정에 못이긴 농민들이 전개했던 동학농민운동과 외세에 의한 개혁이라는 한계를 안고 있었던 갑오개혁은 국운이 기울어가면서 겪었던 하나의 과정일 뿐이었다. 더욱이 일본의 청일전쟁 승리는 일본이 제국주의 국가로 급성장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해줬다. 무엇보다 누란의 위기 앞에서 친청·친일·친러로 분열돼 싸웠던 구한말을 접하면서 느꼈던 안타까움이란!
그로부터 120년이 흐른 지금, 또 다시 120년이 지난 뒤 우리는 후손들로부터 어떤 평가를 받게 될지 생각하게 된다. 여야의 극한 대립 속에 미·중·일 ‘고래 싸움’에 떠밀리고 반북·종북 갈등에 휘말리면서 자칫 통일을 통한 국운 융성의 기회를 살리지 못한 조상이 될까 두렵다.
베이징에 사는 교민은 청마(靑馬)의 해를 맞아 일제 강점기 중국 동북지역에서 독립의 푸른 꿈을 안고 말 달리던 조상을 떠올리기도 했다. 어릴 때 우리가 품었던 “그때 우리 조상은 뭘 하고 있었나”라는 한탄을 후손들이 우리에게 되돌려주도록 해서야 되겠는가.
베이징=정원교 특파원 wkch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