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삼성 성적표는 새 기술로 미지 개척하라는 신호

입력 2014-01-08 02:46

잔치는 끝났다. 노키아와 애플을 누르고 승자독식 효과를 누렸던 삼성전자가 어닝쇼크 수준의 실적을 발표했다. 지난해 4분기 매출은 59조원으로 큰 변화가 없었지만 영업이익이 8조3000억원으로 전분기에 비해 18%나 줄었다. 2011년 1분기 이후 3년 가까이 지속된 상승행진에 마침표를 찍은 것이다.

삼성전자의 실적부진은 우려했던 바다. 회사 측은 환율 영향과 신경영 20주년 특별격려금 지급 등의 일시적 요인 때문이라고 설명했지만 문제는 더 중증(重症)이라는 데 있다. 최근 높은 성장을 구가해온 스마트폰 시장이 정체되면서 IT·모바일부문에서 3분의 2 이상 영업이익을 올린 삼성전자에 위기가 오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다. 삼성전자는 반도체와 가전, 휴대전화 등을 주력으로 경기변동에 따라 골고루 이익을 내 왔지만 최근 몇 년간 IT·모바일 부문 의존도가 지나치게 컸다.

삼성전자는 기로에 놓였다. 소니나 애플을 따라 하는 패스트팔로어(빠른 추격자)는 잘 했지만 퍼스트무버(선도사업자)가 돼 무주공산을 차지하고도 새 캐시카우를 찾지 못하고 있다. 2010년 태양전지, LED, 자동차용 전지, 바이오, 의료기기 등 5대 신수종 사업에 2020년까지 23조원을 투자해 50조원의 매출을 올리겠다고 했지만 아직 가시적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선두 사업은 끊임없이 추격을 받고 있고 부진한 사업은 시간이 없다”고 한 이건희 삼성 회장의 신년사가 엄살이 아니다. 이 회장 말대로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불확실성 속에서 변화의 주도권을 잡으려면 시장과 기술의 한계를 넘어야 한다.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고 한 21년 전 이 회장의 채찍질이 지금도 필요하다. 미래를 내다보고 미지의 세계를 개척하는 자만이 달콤한 열매를 얻을 수 있다. 기존 사업에 안주하다 변화에 대응하지 못해 몰락한 노키아 전철을 밟아선 안 된다.

더 큰 문제는 삼성전자의 위기가 한 기업의 위기로 끝나지 않고 한국경제의 위기로 직결된다는 점이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가 500대 기업 전체 순이익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7%에 달한다. 한국경제가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두 바퀴로 굴러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마트폰으로 지탱한 삼성전자가 휘청이면 삼성전자의 눈부신 실적에 가려졌던 한국경제의 민낯을 마주 대해야 할지도 모른다. 서둘러 한국경제의 체질을 바꿔야 하는 이유다. 수출 대기업에만 의존한 기형적 경제구조는 외풍이 불 때마다 홀로 높은 파고를 헤쳐 가야 하는 돛단배 신세가 될 수밖에 없다. 탄탄한 경제구조를 만들려면 과감한 규제개혁을 통해 한참 뒤처진 내수·서비스 산업을 키워 가야 한다. 그래서 내수·서비스분야에서도 제2, 제3의 삼성전자가 나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