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 성공 확률 따지며 하는 게 아닙니다”

입력 2014-01-08 01:31


“고맙다”/서정인 지음/규장

석달 전 국제어린이 양육기구 컴패션의 서정인 대표를 인터뷰하면서 “이 사람 이야기를 책으로 펴내도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6·25전쟁으로 고아가 된 한국의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시작된 컴패션이 전 세계 아이들을 복음으로 양육하게 된 스토리는 물론이고, 한국에서 임무를 마치고 떠났던 단체가 다시 후원을 받기 위해 돌아와 10년 만에 12만여명의 회원을 얻기까지 서 대표가 겪었던 파란만장한 일들을 생생하게 전한다면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서 대표는 이미 여러 해 전부터 출간을 준비해 왔다고 한다. 허나 워낙에 바쁜 일정이라 원고 작성이 계속 미뤄지고 출간 계획이 몇 번이나 엎어졌다. 그러다 한국컴패션 설립 10주년이었던 지난해 말 드디어 책이 나왔다. 제목은 ‘고맙다’(규장)다. ‘한 아이를 가슴에 품을 때 들리는 하늘의 음성’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미국에서 1.5세 교포 목사이자 유명신학대 교수로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었던 그가 한국에서 다시 시작하는 컴패션의 대표를 맡아 이곳으로 오게 된 사연, 신애라·차인표 부부를 비롯해 수많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히 독자들의 마음도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책 앞머리에서 서 대표는 부끄러운 고백부터 먼저 털어놓았다.

2005년 어느 여자 어린이의 백혈병 치료를 위한 골수 기증을 거절했던 사연이 책 앞머리에 자세히 소개돼 있다. 병원의 연락을 받고 1차 골수 기증을 했는데, 수술 과정에서 의료 사고를 겪었다. 5개월 뒤 수혈자의 병이 재발해 두 번째 골수 기증이 필요하게 됐다. 성공할 확률은 1%밖에 되지 않았다. 주변에서도 모두 말렸다. 서 대표는 고민 끝에 거절 의사를 밝혔다.

불편한 마음과 부담을 떨치기 위해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도 상황을 설명하면서 이번에는 하지 않아도 된다는 확인을 재차 얻어냈다.

“그럼요, 어떻게 두 번이나 하겠어요.”

“목사님, 잘 하셨어요. 몸도 약하시고 할 일도 많으신데요.”

이런 답변을 듣고는 서 대표도 “그래, 맞아. 나는 할 만큼 했어”라고 스스로 위로했다. 그런데 버스가 고장 나 갇혀 있던 중에 옆자리에 앉은 한 미국 한인교회 장로에게서 뜻밖의 답변을 들었다.

“목사님… 하시지요.”

“네?”

장로는 크게 한숨을 내쉬면서 말을 이었다.

“제 큰아이가 백혈병으로 오래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이 일이 그 부모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서 대표는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고 썼다. 자신이 백혈병 어린이의 진짜 아버지였다면 수술을 거부했을까? 절대 그러지 못했을 것이다. 설사 살릴 수 없다 할지라도 시도하고 또 시도했을 것이다. 그는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의 마음을 느꼈다.

‘그 아이는 내 것이란다.’

생각이 바뀌었다고 다시 전화하기가 미안할 정도로 부끄러웠다고 그는 고백했다. 어린이 양육기구의 대표가 어떻게 온갖 구실을 찾아 못하겠다고 할 수 있었을까. 어떤 숭고한 동기나 자원하는 마음에서 골수 기증을 하는 것이 아니라 창피하다는 편지를 병원과 환자 부모에게 보냈다.

서 대표의 골수를 두 번이나 기증받은 그 아이는 1%라는 낮은 확률을 이겨냈을까? 그 결과는 책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고맙다’에는 서 대표가 세계 곳곳에서 만난 어린이들의 이야기는 물론, 그 아이들을 후원하는 이들의 이야기도 기록돼 있다. 하나하나가 다 감동이다. 구두닦이를 해서 번 돈으로 어린이를 후원하던 경기도 성남의 김정하 목사가 루게릭병에 걸렸다. 컴패션은 김 목사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담아 그가 후원하던 어린이들에게 전해주었다. 김 목사의 사연을 접한 이들은 “후원자분들이 다 부자인 줄로만 알았다”며 펑펑 울었다.

이 책에는 특별한 부록이 있다. 한국컴패션이 첫 번째로 후원한 필리핀 세부의 준 마리와 서 대표가 2005년부터 최근까지 주고받은 편지와 사진이 실려 있다. 컴패션이 강조하는 ‘어린이 양육’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해마다 성장해가는 준의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

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