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설 목사의 시편] 웃으며 춤출 수 있는 세상
입력 2014-01-08 01:31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희망을 염원하며 새해를 맞았다. 새해에는 가정과 교회와 직장이 모두 평화롭기를 기원한다. 무엇보다도 새해에는 쉽게 절망하며 극단적인 선택을 안 했으면 좋겠다. 남의 목숨을 소중히 여기는 것은 고사하고 자기 목숨을 포기하는 비극이 없어야 한다. 즐겁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밝은 세상을 저주하며 등을 돌려서야 되겠는가. 새해에는 자기 주변의 사람들을 실망시키고 힘들게 하는 사람들이 없었으면 좋겠다. 인간관계는 거미줄처럼 서로 얽혀 있어 모든 것을 나 좋은 대로 할 수는 없다.
어떤 취업전문업체가 인사담당자들을 대상으로 ‘직장 내 퇴출 대상 1순위’를 조사한 결과, ‘회사 분위기를 저하하는 직원’이 1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분위기를 해치는 사람은 어디서나 환영받지 못한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가정과 교회, 그리고 사회와 직장이 평화를 이룩하는 것이다. 그러자면 삶을 아름답게 하고, 관계를 새롭게 하는 일을 자주 만들어야 한다.
웃으며 춤출 수 있는 세상! 새해는 흥겨운 잔치와 아름다운 교제가 많아지기를 소망한다. 불가리아는 장미밭에서 장미를 따는 처녀들이 노래하고 춤을 추면 쿠케르(kuker)라는 가면을 쓴 청년들이 그 처녀들 속으로 뛰어드는 장미축제가 있다. 노르웨이의 바이킹 축제, 네덜란드의 튤립축제, 브라질의 삼바축제 등이 유명하다. 이런 문화현상들은 삶을 아름답게 하고 의미 있게 만들며, 인간관계를 새롭게 하는 방법이다. 그리고 사회통합의 효과를 얻는 일이다.
학자들이 개미사회를 연구했더니 철저한 조직사회를 이루고 있었다는 것이다. 여왕개미는 일개미들의 머리에 여왕개미 물질을 뿌려서 다른 행동을 못 하도록 마비시켜 놓는다고 한다. 그래서 오직 여왕개미만이 번식하고, 일개미들은 여왕개미를 위해 충성을 다하도록 조직사회를 형성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개미 사회는 건강한 조직사회가 아니다.
지금 우리가 경쟁사회를 살아가면서 개미사회화되어 가는 것이 아닌지 우려된다. 사람들은 자본주의 사회구조가 자기 목표를 성취하는 데 좋은 방식이라고 하지만 개미사회처럼 될 가능성이 많다. 경쟁은 소유물과 소유영역의 확대, 즉 자기 이익을 나타내는 수단이다. 그래서 경쟁을 추구하는 사회에서는 도덕적이거나 윤리적인 삶은 의미가 없다.
‘동물해방(Animal Liberation)’의 작가인 실천윤리학자 피터 싱어는 ‘이렇게 살아가도 괜찮은가?(How Are We To Live?)’라는 책에서 “얼마만큼 우리 자신을 위해 살고, 얼마만큼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살 것인지 결정해야만 하는 단계에 도달해 있다”고 말했다. 우리가 덜 경쟁하고 평화로운 삶이 되기 위해서는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 5:3)라는 예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우리가 조금 가난한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이웃과 함께 웃으며 춤추는 날이 더 많아질 것이다.
<여주중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