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글속 세상] 피란민 품은 달동네… 알록달록 그림같은 마을로

입력 2014-01-08 01:31 수정 2014-01-08 16:27


‘한국의 산토리니’ 부산 감천 문화마을

“목간통 갈라꼬? 저기 까꼬막으로 가면 개죽은데 마 심이 들끼다 이짜로 돌아가뿌면 심이 쪼메 덜 들끼다.”

한국의 ‘산토리니’ 또는 ‘레고마을’로 불리는 부산 사하구 감천 문화마을. 관광안내 봉사를 하시는 최덕식(65) 할아버지가 마을 구경을 나온 학생들에게 자상하게 설명을 한다. 구수한 사투리는 “목욕탕(감내어울터) 가려고? 저기 산비탈로 가면 가까운데 많이 힘이 들게다. 이쪽으로 돌아가면 힘이 좀 덜 들게다”란 뜻이다.

개항과 광복, 6·25전쟁을 거치며 피란민 등 숱한 인간군상을 품었던 감천 문화마을은 언제부터인가 ‘달동네’라는 딱지가 붙어 도시 한 귀퉁이 잊혀져 가던 공간이었다. 하지만 ‘2009 마을미술 프로젝트’ 공모에 당선되면서 정부 지원 속에 예술인과 주민들이 함께 마을에 새바람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이들은 폐가를 사들여 갤러리와 공방, 카페 등을 만들었고 마을 곳곳에 아름다운 벽화와 조형물을 설치했다. ‘미로미로 골목길 프로젝트’와 ‘산복도로 르네상스’ 등의 사업도 시행되면서 감천 문화마을은 예전과는 전혀 다른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이내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들었고, 현재는 해외에도 소개된 유명 관광지로 거듭났다. 최근엔 민관협력 우수사례 대통령상도 수상했다.

감천고개에서 마을을 바라보면 옥녀봉에서 천마산에 이르는 산자락을 따라 지붕 낮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푸르고 붉은색 지붕, 노랑과 분홍의 물탱크가 어울려 기하학적인 풍경을 빚어낸다. 오와 열을 맞추어 정겹게 들어선 집들은 마치 성냥갑들이 모여 있는 듯하다. 그 모습이 그리스의 산토리니와 꼭 닮았고, 누군가 공들여 만들어놓은 레고 블록 같기도 하다.

마을 토박이 박수용(68) 할아버지는 집들이 이렇게 된 이유에 대해 “옛날부터 집을 지을 때 사람 다니는 길을 막지 말고 뒷집 햇빛을 막지 말아야 한다”는 두 가지 원칙이 있었다고 설명한다. 통행자와 이웃을 배려하는 공동체 정신이 한 폭 그림 같은 마을을 탄생시킨 것이다. 앞으로도 재개발과 재건축이 아닌 방식으로 곁 동네가 함께 행복한 마을로 번창하기를 바라는 게 이곳을 찾은 이들 모두의 한결같은 마음이다.

부산=사진·글 이병주기자 ds5ec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