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한 방이면 피로 회복·피부 미백·체중 감소…” 만능약 홍보 ‘비타민 주사’ 주의보

입력 2014-01-07 02:56


최근 원인을 알 수 없는 두통과 무기력증에 시달리던 직장인 이모(32)씨는 서울 종로구의 한 내과를 찾았다. 의사에게 증상을 설명했지만 “큰 이상은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의사는 이씨에게 “피로감이 심하다면 ‘칵테일 주사’를 맞아보는 게 어떠냐”고 권했다. 몸에 필수적인 비타민과 미네랄을 혈관으로 직접 투여하는 요법이라고 했다.

의사는 “음식으로도 섭취할 수 있는 영양소지만 혈관에 넣으면 흡수율이 훨씬 높다”며 “얼마 전 한 직장인이 몸이 축 처진 채 왔다가 이 주사 맞고 나더니 ‘기운이 난다’며 병원 문을 나섰다”고 말했다. 호기심이 동한 이씨는 7만원을 내고 시술을 받았다. 그는 “피로는 조금 풀린 느낌이었지만 약효 때문인지, 주사 맞는 40분간 잠시 잠들어서 그런 건지 잘 모르겠다”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취업준비생 박모(26·여)씨는 지난달 ‘백옥 주사’를 맞았다. 인터넷에서 ‘피로가 풀리고 피부도 좋아진다’는 광고를 보고 병원을 찾았다. 이 주사의 성분은 간경화나 항암치료에 쓰이는 항산화제 글루타치온이다.

의사는 “나도 일주일에 한 번씩 꼭 맞는다. 일반적인 피로는 한 번만 맞아도 다음날 아침이면 어느 정도 풀리는 걸 느낀다”며 주사를 처방했다. 병원 상담실장은 “주사를 맞으면 육체 피로가 풀리고 피부 미백 효과가 있다”면서 “한 번으로는 효과가 없고 5∼10회는 맞아야 한다. 1회 6만원인데 5회에 25만원으로 할인해주겠다”고 했다.

비타민주사 과장광고가 범람하고 있다. 피로 회복, 피부 미백, 체중 감소, 노화 방지, 스트레스 해소 등 ‘만병통치약’처럼 온갖 효과가 있다며 병원들이 홍보하는 통에 소비자만 골탕 먹는다.

명칭도 다양하다. 마네킹 같은 몸매를 만들어준다는 ‘마네킹 주사’, 피부와 몸매를 개선해 신데렐라로 만들어준다는 ‘신데렐라 주사’, 만성피로에 효과가 있다는 ‘마늘 주사’ 등 정체불명 시술이 난무하고 있다. 유명 연예인들이 즐겨 맞는 주사라며 그들의 이름을 붙여 ‘비욘세 주사’ ‘아이유 주사’라고 광고하기도 한다. 도를 넘어선 병원 마케팅에 최근 가수 아이유 측은 “아이유가 주사 맞고 검은 얼굴이 하얘졌다는 건 사실과 다르다”고 직접 해명했다.

전문가들은 주사 요법의 효능에 회의적이다. 서울대 가정의학과 박상민 교수는 “암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실험한 결과 멀티비타민이나 항산화제를 투여해서 증상이나 삶의 질이 개선된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요법으로 잘못된 위안을 얻기보다 절주·금연·운동 등 건강한 생활습관을 실천하는 편이 삶의 질 개선에 훨씬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울대 심리학과 곽금주 교수는 주사 요법의 효능을 일종의 ‘위약 효과’라고 평가했다. 곽 교수는 “주사 요법 열풍은 경쟁사회에서 더 쉽고 빨리 남보다 앞서려는 강박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자칫 중독 우려도 있어 병원의 지나친 상술은 규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