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우 목사의 시편] 버리고 시작하기

입력 2014-01-07 01:31


새해가 되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인사하며 서로 복을 빌어준다. 그러나 그 복을 받기 위해 행해야 할 우리의 책임은 무엇인지, 책임을 다해 그 복을 받는 사람은 몇이나 되는지 생각해보고 싶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이 모든 것을 더하신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기분 좋은 일이다. 새해에는 독자들이 ‘이 모든 것을 더하는 복’을 받으시길 축복한다. 복 받을 필요충분조건은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를 구한다는 것은 전방위 삶에서 그분의 통치를 구하는 것이다. 말씀이 우리를 다스리도록 선택과 결정권을 내어 드리는 것이다. 의는 ‘관계의 신실함’이다.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 행동의 의로움을 포함한 동기의 의로움이다.

여기서 영적인 역발상을 제안하고 싶다. 구하기 전에 버리는 것이다. 피터 드러커는 ‘폐기를 통한 혁신’이라 했다. 데이비드 호킨스는 ‘놓아 버림’이라 했다. 버려야만 채울 수 있는 공간이 생긴다. 구할 것을 찾기 전에 먼저 버릴 것을 찾고 실행에 옮겨보자. 이 모든 것을 얻고자 하는 마음으로 ‘그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을 버리자는 것이다. ‘그 나라와 의’가 목적이 되어야 한다. 전리품은 군인이 전쟁에서 목숨을 포기하고 충성할 때 결과물로 주어진다. 제자들에게 요구하신 것도 ‘버림’이었다. 베드로에게는 그물, 가룟 유다에게는 자기 목적이었다. 부자 청년에게는 재산을 버리라고 말씀하셨다.

매년 연말이면 교구 목사들이 ‘목회 평가서’를 제출한다. 평가서 마지막 질문은 ‘담임목사가 당장 버릴 것’이다. 내가 요구한 쓴소리지만 정작 그들이 지적하는 것을 접하고 나면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당신들이 목회를 알아! 담임목회 해봤어!’ 그러나 그분들의 말을 하나님 음성으로 듣는다. 버림의 아픔을 기꺼이 감당하면 성도들은 나를 보고 조금 덜 아파할 것이다. 성장을 위해 자발적인 버림을 선택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교회에는 은혜와 도전이 된다.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부인하라”고 말씀하셨다. 2014년 우리가 버려야 할 것은 비생산적인 만남과 바쁨이다. 과도한 부채와 우선순위 없는 열심이다. 익숙함과 자기 의, 주관적인 사고와 기복신앙 등이다. 버려야 할 것을 버리지 않고 구하고 찾아서 채운다면 두 가지가 뒤섞여 엉망진창인 삶이 되어버린다. 과도한 부채를 어떻게 버리느냐고 묻는 분이 있다. 다 버리고 처음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매몰 비용이 아까워 버려야 할 것을 만지작거리면 시간도 잃고 기회도 놓친다. 버릴 것은 버리고 본질인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자. 2014년이 또 금세 저물어갈 것이다. 오직 그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해서 ‘이 모든 것을 받는 복’을 마음껏 나누길 축복한다.

<일산 로고스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