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살린다더니… 제재만 있고 대책은 없다
입력 2014-01-07 01:49 수정 2014-01-07 01:53
유통업체 “대형할인마트 휴일 영업 규제가 되레 농민들 판로 없애”
“뼈 빠지게 배추 농사 지어 봐야 뭐합니까. 생산마진은 고사하고 원가도 못 받게 생겼으니 이럴 바에야 갈아엎는 게 오히려 낫지요. 유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니 품질 좋은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제값을 못 받는데… ”
10년 전 전라도 해남으로 귀농한 김기림(45·가명)씨의 말이다.
지난해 김씨가 지은 배추 농사 면적은 9917㎡(약3000평) 남짓. 예전 같았으면 배추 한 포기당 1000원은 족히 받았다. 그나마 받는 것도 원가를 빼고 나면 손에 쥐는 돈은 고작 몇백만원이 전부. 하지만 올해는 아예 수매 차량들도 안 보일 정도라고.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중간 유통업체인 농업회사법인 ‘신선미 세상’ 신재민 이사는 “대형할인마트의 휴일영업 규제가 농민들의 판로를 없애고 있다”며 “그 때문에 (대형마트에 납품하던) 우리 회사도 10% 이상의 매출 감소를 겪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김 이사는 “마트에서 농산물이 안 팔리면 어쩔 수 없이 재래시장으로 판로를 열지만 기존 거래처가 아니기 때문에 평균가보다 50% 이상 저렴하게 넘길 수밖에 없다”며 “이렇게 되면 전체적으로 가격이 폭락해 농민들에게까지 영향을 받는다”고 말했다. 이어 “농가 입장에서는 농산물이 많이 나와도 팔 곳이 없어져 결국 애써 지은 농작물을 폐기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김 이사는 “이게 다 정부가 대형할인마트의 휴일 영업 규제에 따라 생기는 일”이라며 “지금 당장 재래시장의 상황은 조금 나아질 수는 있어도 결국 피해는 농민들에게 돌아가게 된다”고 하소연했다.
정부가 대형할인마트의 휴일영업을 규제하면서 농가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 특히 대형마트에 입점해 있는 중소업체마저 도미노 피해를 입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가 골목상권과 중소기업을 살리기 위해 만든 각종 정책들이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대두된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A할인마트에 입점해 있는 어린이놀이방 업체는 일요일 매출 비중이 전체매출 비중의 30%가 넘으나 주말 고객의 감소로 매출이 반으로 줄었다. B할인마트에 입점해 있는 서점 주인은 “학습지의 경우 일요일 구매고객이 대다수인데 휴무로 인한 판매 감소가 심각하다”고 전했으며, 같은 마트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는 원장 또한 “단골고객 이탈로 평일까지 고객 이탈이 발생해 어쩔 수 없이 인원을 감축했다”고 말했다.
정부 규제의 역습은 대형할인마트뿐 아니라 공정위의 프랜차이즈 모범거래 기준, 동반위의 중소기업 적합업종 등에서도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관련 업계는 “정부의 규제가 실제 골목상권 살리기에는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며 “오히려 규제 때문에 기존 프랜차이즈 점포에 대한 권리금, 임대료가 상승하며 투자위축과 고용불안을 가져오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가운데 대한제과협회는 적합업종 선정 이후 동네빵집 숫자가 늘었다고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 프랜차이즈 빵집들은 “빵집 숫자의 증감은 무의미하다. 중요한 것은 개인별 수익”이라며 “제과협회는 20% 늘었다지만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역설적으로 동네빵집 간 거리제한이 없는 상태에서 동네빵집이 늘었다면 오히려 경쟁 심화로 매출이 하락해야 하는 것이 상식”이라며 규제에 대한 여러 가지 부작용을 꼬집었다.
조규봉 쿠키뉴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