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신종수] 대한민국에서 1급공무원이란

입력 2014-01-07 01:33


대한민국에서 1급 공무원은 엘리트 중의 엘리트다. 대부분 고시를 패스해 공직사회에서 수십년 동안 산전수전 다 겪으며 최고의 전문성과 경험을 쌓아온 인재들이다.

요즘 젊은이들에게 가장 인기가 높은 직업이라는 공무원 중에서도 1급은 공무원의 꽃이라 불리는 최상위 직급이다. 장관이나 차관의 직접적인 손발이 돼 부처 업무를 실무선에서 책임진다. 정치권 같은 데서 온 ‘어공’(어쩌다 공무원·비관료출신 별정직 공무원)이 아니라 뼛속부터 공무원인 ‘늘공’(늘 공무원·고시출신 진짜 공무원)이 대부분이다.

그런 1급들을 대상으로 유정복 안전행정부 장관이 일괄사표를 받을 가능성을 언급하고, 정홍원 국무총리가 주말에 예정에도 없던 관계장관회의를 긴급 소집해 이를 부인하는 해프닝이 있었다.

숙청도 아니고 일괄사표라니

정부 내 혼선도 문제지만 박근혜정부 출범 후 1년이 다 되가는 시점에 일괄사표를 거론하는 것은 때늦은 감이 없지 않다. 취임 첫해에 정부 진용 세팅을 마치고, 2년차부터는 본격적으로 일을 해야 하는 시기여서 타이밍도 맞지 않다. 이명박정부도 1급 공무원에 대한 일괄사표를 받아 선별 처리한 적이 있지만 정부 출범과 동시였다.

유 장관은 “공직이기주의를 버리고 철밥통을 깨야 한다”고 말했다. 공무원들의 복지부동과 보신주의, 관료주의 등을 생각하면 속 시원하게 말한 측면이 있다. 새 정부 정책을 수행해야 할 고위 공무원들이 자리나 지키고 앉아 있으면서 얼마나 움직이지 않았으면 이런 소리를 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국정 과제 추진에 냉소적인 공직자를 솎아내고, 신망 있고 일 잘하는 인사를 발탁함으로써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을 필요가 있다. 지난해 말 국무총리실이 1급 공무원 10명 전원의 사표를 받은 것도 철도파업 사태 등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움직이지 않은 일부 1급 공무원이 있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공무원들을 윽박지르며 일괄사표 운운하는 방식은 어딘지 서툴러 보인다. 떠들썩한 인사태풍은 공무원 조직의 동요와 후유증이 크기 십상이다. 고도의 전문성과 경험을 가진 공무원 조직이 교묘한 방법으로 복지부동을 하기 시작하면 당해낼 재간이 없다는 것이 공직 사회를 경험한 인사들의 얘기다.

공무원 출신이 아닌 인사가 장관으로 와서 새로운 정책이라도 시행하려 하면 온갖 규정과 자료와 논리를 들이댄다. 민감한 사업에 대해서는 탁월한 전문성과 경험, 좋은 머리를 활용해 이건 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래서 안 된다고 이유를 늘어놓는다. 그마저 안 되면 시키는 일을 적당히 하는 척만 하거나 눈치를 보면서 움직이지 않는다. 공무원이 주인이고 장관은 잠시 왔다 가는 객일 뿐이다. 이것이 바로 복지부동(伏地不動)이나 복지안동(伏地眼動), 즉 공무원 사회 특유의 태업 문화다.

개혁과 분위기 쇄신을 시도하지 않은 정권이 없었지만 제대로 성과를 내지 못하고 공무원 조직문화가 그대로 인 것은 이 때문이다.

분위기 쇄신과 헌신 유도해야

공무원들이 복지부동하지 않도록 개혁과 쇄신이 필요하다. 동시에 신바람 나게 헌신할 수 있도록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이 바로 국정운영 능력이다. 그래서 쉽지 않다. 공직기강을 잡는 동시에 공무원들의 사기를 북돋아 주면서 국정운영 목표를 향해 헌신할 수 있도록 하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1급 공무원들의 전문성을 어떻게 활용할 것이냐는 일차적으로 장관들의 몫이다. 장관들에겐 전문성 못지않게 리더십이 중요하다. 정부 부처 분위기를 쇄신하려면 1급뿐만이 아니라 리더십이 없는 장관도 교체 대상이 돼야 한다.

신종수 사회2부장 js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