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임만호 (10) “‘엑스플로 74’ 30만명분 식사·재정 맡아달라”

입력 2014-01-07 01:31


미국 엑스플로 72대회에 참가한 한국대학생선교회(CCC) 대표단 일행 32명은 뉴욕, 샌프란시스코, LA, 라스베이거스 등 미국 대도시 몇 곳을 둘러봤다. 가난한 나라 한국 국민 입장에서 미국이란 나라는 입이 벌어질 정도로 경이로웠다. 귀국한 뒤 엑스플로 74대회를 위한 스태프 기도회가 서울 수유동 영락기도원에서 열렸다. 그때는 정말 국가와 민족, 민족 복음화를 위해 가슴을 치며 기도하던 때다.

“주님, 미국이라는 나라를 가보니 기독교 정신 아래 나라가 평안하게 운영되고 정치 경제적으로 상당히 발전된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여전히 무장공비가 나타나고 공산주의의 위협 아래 놓여 있습니다. 이 불안감을 어찌해야겠습니까. 우리나라는 왜 이렇게 가난한 것입니까. 주님, 이 불안과 어려움을 어찌해야 합니까. 주여, 민족 복음화의 불씨를 일으켜주시옵소서.”

사흘간 금식기도를 하며 국가와 민족을 위해 간구하는데 어찌나 눈물이 나는지 주체할 수 없을 정도였다. 정말 민족 복음화의 열기가 뜨거워지고 각오가 새로워지는 계기가 됐다.

1973년 가을엔 춘천성시화대회를 윤수길 간사, 춘천CCC 요원들과 약 3개월간 준비해 성공적으로 치렀다. 이어 김준곤 목사님과 총무 홍정길 간사를 중심으로 엑스플로 74대회 준비에 돌입했다.

엑스플로 74대회는 74년 8월 13∼18일 여의도 5·16광장(현 여의도공원 일대)에서 연인원 655만명이 참여한 한국교회 역사상 최대의 전도집회였다. 이때 나는 총무부장으로서 재정과 식사 준비를 담당했다. 대회를 앞두고 김 목사님이 나를 방으로 부르셨다. “임 간사는 아이디어가 좋잖아요. 71년 대전 집회의 경험을 살려 약 30만명이 식사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내보세요. 그리고 단기간에 전국에서 약 30만명 이상의 요원이 상경하는 방안도 생각해보세요.”

지금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때 기술력으로 30만명의 밥을 한꺼번에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얘기나 마찬가지였다. 연구 끝에 월남전 파병 때 쓰였다는 간이 밥공장이 생각났다. 경기도 이천 공장을 찾아갔다.

“뭐라고요? 30만명의 밥을 짓는다고요! 가만히 생각해 봅시다. 밥을 지을 수는 있을 겁니다. 그러나 5·16광장에 대규모 시설을 만들어야 하고 밥을 짓기 위해 많은 인원이 필요합니다. 문제는 일시에 시설을 설치해야 하는 데다 일단 사용한 시설은 재사용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경제적 손실이 엄청날 텐데 이런 위험부담을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말을 듣고 보니 일리가 있었다. 결국 간이 밥공장은 포기했다. 기도하며 연구한 끝에 대림보일러에 근무하던 홍정길 목사님의 고모부 박종구 장로님이 생각났다. 박 장로님과 대림보일러 기술진이 참여해 회의를 거듭한 끝에 여의도 아파트의 보일러에서 나오는 스팀으로 밥을 짓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짜냈다.

보일러 스팀으로 밥을 짓는 원리는 이렇다. 철판으로 거대한 탱크 2개를 만들고 거기에 파이프를 연결하는 것이었다. 그 관은 다시 여의도 아파트 보일러에 연결하고 거기서 나오는 스팀으로 밥을 짓는 원리였다. 탱크 안에는 1500개의 넙적한 양은 밥통을 만들고 각각 200인분의 쌀을 넣고 물을 맞춰 밥을 짓는 것이다.

시험 삼아 소형 탱크를 만들고 거기에 밥을 해봤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반찬은 단무지로 했고 식수는 수돗물로 대신했다. 엑스플로 74대회 때 30만명의 식사를 큰 어려움 없이 감당할 수 있었던 비결은 1만명을 먹인 71년 대전 집회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