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경호] 新유목민

입력 2014-01-07 01:44

직주근접(職住近接). 직장과 집이 가까워야 한다는 부동산 용어다. 짧은 통근거리는 직장인의 삶의 질을 크게 높여준다. 사람들은 직주근접을 하려 애를 쓴다. 더 빠르고 안전하게 이동하려는 인간 본능이 교통수단을 비약적으로 발달시켜 왔다.

갈수록 직장인 통근거리가 길어진다. 일본 도쿄에서 고속철 신칸센으로 30분∼1시간 걸리는 외곽 도시까지 통근하는 직장인이 그다지 낯설지 않다. 임금을 더 받으려고 프랑스인들은 국경을 넘어 스위스령 도시로 통근을 한다. 어떤 이들은 프랑스 테제베(TGV)나 독일 이체(ICE)로 다른 국가 도시를 오간다. 도버해협을 횡단하는 유로스타로 하루 320㎞를 통근하는 영국인과 프랑스인들도 늘었다. 유로스타 탑승자 절반이 통근자들이다. 2007년에는 프랑스 대선 후보가 런던으로 가서 자국민들에게 유세하는 일도 있었다.

뉴욕 맨해튼 등 대도시를 제외하면 미국인들의 통근거리는 상대적으로 더 길다. 2006년 열린 ‘미국 최장거리 통근자’ 대회에서 데이비드 기븐스라는 직장인이 수상했다. 그는 캘리포니아주 마리포사에서 뉴멕시코주 새너제이까지 599㎞를 출퇴근했다.

통근족(族)들에게 노상분노라는게 있다. 폭력적 행동을 하는가 하면 심장마비와 뇌졸중, 위궤양을 얻기도 한다. 비만증도 통근과 관련이 있다. 미국 조지아공대팀 조사 결과 운전시간이 30분 늘어날 때마다 비만 위험도는 3% 증가했다. 도로가 막히면 10명 중 4명이 뭔가를 먹는다고 한다.

현대인들은 농경시대 유목민들이 며칠씩 걸어 갔던 먼거리를 하루에 오간다. 도시화로 유목민이 사라져가고 독특한 그들의 생활상은 인류학적 기록으로 남는다. 인류사회학자들이 유목민이란 단어로 이론이나 용어를 기발하게 만들어낸다. 미 MIT 미디어랩 니그로폰테 교수가 처음 언급한 ‘디지털노매드’가 대표적이다.

한국사회에 최근 유목민을 뜻하는 ‘노매드족’이란 말이 되살아났다. 치솟는 전·월셋값을 감당하지 못해 전철 노선을 따라 서울 외곽으로 내몰리는 ‘전세난민’들이다. 전철역 1∼2개를 더 갈 때마다 전셋값은 500만원씩 떨어진다. 전세난민들은 평균 1시간 콩나물 전동차를 타고 서울로 출퇴근한다. 노상분노나 비만증이 없을 리 없다. 반면 부동산 침체로 집을 사지 않고 서울시내 고가 전세를 옮겨다니며 직주근접을 즐기는 ‘전세귀족’도 더 늘었다. 무능한 부동산 정책이 낳은 2014년 한국판 신(新)유목민들의 모습이다.

김경호 논설위원 kyungh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