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의 여행] 김보국 외 ‘헝가리의 북조선 관련 기밀해제문건’
입력 2014-01-06 01:31
철의 장막에 가려진 북한 지도부의 움직임을 직간접적으로 알 수 있는 채널 가운데 하나가 북한 주재 외국대사관에서 본국으로 송출하는 기밀문서들이다. 헝가리 국립문서보관소에 소장된 ‘북조선 관련 외교기밀문서(1945∼1993)도 이에 해당한다. 문서 생성기관은 헝가리 외무부. 5만 페이지 이상의 이 문서들은 북한 최고 지도부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고하고 있어 관심을 끈다.
“내가 획득한 정보에 의하면 현재 대규모의 공사가 전국적으로 진행 중이고, 산에서는 참호 구축작업뿐만 아니라 인민들을 위한 방공호 건설이 진행되고 있다. 소련대사가 나에게 준 정보에 의하면 ‘소련대사와 김일성의 대화 중 김일성은 북조선이 지리적 여건(산악지형)상 상당부분의 (핵)폭발이 산지지형으로 인해 확산되지 않기 때문에 핵전쟁에서 확실히 이점이 있으며, 대규모 파괴를 위해서는 상당히 많은 폭탄이 필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고 한다.”(북조선 주재 헝가리 대사 꼬바치 요제프가 외교부로 보낸 보고 1963년 2월 15일)
문서 내용은 정치, 외교 사안에 대한 보고서들이 다수를 점하고 있으나, 예술, 사회, 학문 등 사회 전반과 관련한 보고도 드물지 않게 등장한다.
특히 북한 현대사에 등장했던 거의 모든 사건에 대해 헝가리 외교관의 시선뿐만 아니라 평양에 상주하던 다른 나라 외교관들과 나눈 의견, 혹은 그들의 관점으로 종합적으로 보고하고 있다.
이 책은 헝가리 부다페스트 엘테대학에 재직했던 김보국 박사가 수집한 문건 가운데 일부를 북한 전문가들이 함께 번역했다. 평양 주재 외국 공관들의 정보 수집 능력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채롭다. “김일성이 동독의 오트 그로테볼 총리에게 보낸 서신에 따르면 1955∼1962년 그로테볼 총리의 동생(혹은 형)을 단장으로 한 동독전문가와 기술자 457명이 북한 주민을 지휘해 함흥을 5236채의 아파트와 공장, 발전소, 병원, 음식점, 오락시설을 갖춘 완벽한 도시로 재건했다. 북한 지도부는 함흥이 평양보다 더 발전하고 멋진 도시가 되는 것을 우려한 듯 상당량의 자재를 평양으로 빼돌렸다.”(1962년 헝가리 대사관 보고서) 이들 문건들은 북한 현대사를 객관적 시선으로 복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자료적 가치가 높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