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수원의 ‘무늬만 개혁’, 공기업 불신만 키운다
입력 2014-01-06 01:38
원전 비리의 핵심 몸통인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과 한국전력기술(한전기술)이 개혁과는 거리가 먼 행보를 보이고 있다. 검찰 수사가 한창이던 지난해 6월 1급 이상 간부 전원이 책임을 지겠다는 의미로 낸 사표가 모조리 반려된 것이 단적인 사례다. 한수원의 1급 이상 간부 179명은 새해 인사에서 한 명도 물러나지 않았으며 한전기술 1급 이상 간부 69명도 마찬가지였다.
더욱 한심스러운 점은 개혁이란 미명 아래 영입한 외부 인사들이 하나같이 원전을 잘 알지 못하는 비전문가들이란 점이다. 특정 대학 특정 학과를 졸업한 선후배끼리 밀어주고 당겨주는 것이 비리의 원인이 돼 듣기에도 거북한 ‘원전 마피아’란 단어가 생겼다는 사실을 벌써 잊었단 말인가. 대기업 재무팀에서 일한 사람을 원전본부장에 앉히는 것을 개혁 인사라고 이해할 국민이 있겠는가.
한수원의 이 같은 행태는 소나기는 피하고 보자는 얄팍한 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다. 시간이 흘러가면 국민들의 감시 눈초리가 흐려질 줄 알고 이런 편법으로 속이려 드는가. 조작된 검사서를 눈감아주는 등 상상도 할 수 없는 범죄가 드러날 때에는 마치 석고대죄하듯 전원 사표 제출 운운해놓고 시간이 지난 후에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하면 그냥 넘어갈 줄 알았는지 되묻고 싶다.
마침 감사원이 새해 들어 공공기관 전방위 감사에 착수했다. 준비팀만 30여명으로 거의 모든 공공기관과 이를 감독하는 정부부처가 대상이다. 과도한 부채나 방만 경영이 감사의 초점이 돼야 하겠지만 최우선으로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직접적 관련이 있는 한수원에 대한 고강도 감사가 선행돼야 할 것이다. 그동안 감사 무풍지대에서 안주했던 한수원이야말로 공기업 개혁의 생생한 모범 사례가 돼야 한다.
원전은 우리가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분야다. 천연 에너지 자원 하나 없는 나라에서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값싼 원전 이용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안전이 담보되지 않으면 돌이킬 수 없는 막대한 피해를 안겨주는 원전은 비리와는 아예 콘크리트 담을 쌓을 정도로 고도의 청렴성이 요구되는 분야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이번처럼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개혁 시늉만 내고 적당히 넘어가는 구태는 한심스럽기조차 하다.
한수원이 창조경제니 동반성장이니 하는 정부 방침에 호응하듯 이와 유사한 조직을 만들었다고 개혁을 완성한 것으로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인사가 만사라는 말의 참뜻은 비리의 온상으로 낙인찍힌 한수원의 오늘이 있기까지의 책임자를 모조리 솎아내는 것에서 찾아야 한다. 조직의 윗사람이 도덕적으로 깨끗하지 못하면 비리와 각종 사고가 나기 마련이다. 상탁하부정(上濁下不淨)이란 옛말도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