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석교사 명암… 경기도, 초임교사 컨설팅 분주-서울, 수업 줄어 ‘천덕꾸러기’

입력 2014-01-06 01:31


경기도 한 고교의 수석교사 A씨(52)는 겨울방학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어김없이 출근을 서두른다. 올해부터 바뀌는 교과서에 맞춰 새로운 수업 기법을 개발하기 위해서다. 방학에도 매일 밤 10시까지 수업 모형 개발이 이어지고 있다.

수업 모형 개발 말고도 A교사가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업무 중 하나는 동료 교사들을 대상으로 한 ‘수업 컨설팅’이다. 재킷 안쪽주머니에 늘 넣고 다니는 낡은 다이어리에 적힌 컨설팅 일정은 ‘수석교사 3년차’를 맞은 그의 빡빡한 하루를 짐작하게 한다.

A교사는 “지난해 11월에는 인근 고등학교의 한 초임 교사로부터 ‘수업 역량을 향상시키고 싶다’며 컨설팅 부탁이 들어오기도 했다”며 “같은 학교뿐 아니라 인근 다른 학교나 타 지역으로도 학교 단위의 집단 수업 컨설팅을 많이 다닌다”고 말했다.

◇경기도의 성공=23년 경력의 A교사가 수석교사가 되기로 결심한 데에는 ‘수업’이라는 교사의 본업에만 매달릴 수 있다는 것이 크게 작용했다. 물론 누군가에게 자신의 수업을 공개하거나 동료 교사에게 조언을 하는 것 모두 부담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보람도 컸다. 새로 개발한 수업 방식 덕에 산만한 아이들의 집중력이 높아지거나 컨설팅을 해준 교사들로부터 감사인사를 받을 때는 ‘수석교사가 되길 잘했다’고 느낀다.

A씨 사례는 수석교사제의 장점이 극대화됐을 때 어떤 효과가 나타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바탕에는 경기도의 지원이 있었다. 경기도는 수석교사제를 도입하면서 수석교사의 수업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정원 외 기간제 교사’를 배치했다. 기간제 교사가 수석교사의 업무를 보조하면서 A교사의 수업시간은 1주일에 10시간에서 6시간으로 줄었다. 수석교사는 여유시간을 컨설팅과 수업 모델 개발 등에 할애할 수 있게 됐다.

초임 교사의 컨설팅을 장려하는 정책도 효과를 발휘했다. 경기도에서는 경력이 짧은 교사들은 선배 수석교사를 만나 수업 방식을 점검받고 개선점을 찾는 컨설팅을 권고받는다. A교사는 “아무리 후배 교사라고 해도 컨설팅을 할 때는 조심스러운 편인데 제도적으로 컨설팅을 의무화한 덕에 한결 마음 편히 임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같은 제도 다른 결과…서울의 부진=동일한 수석교사제를 운영하면서도 지원에 인색한 서울의 경우를 보면 같은 제도라도 어떻게 운영하는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서울의 한 중학교 수석교사 B씨(51). 그 역시 교재 개발 강의 기법 등 ‘수업’과 관련된 것이라면 모든 방면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하지만 B교사는 현재 서울의 수석교사제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입장이었다.

B교사가 꼽는 서울 지역 수석교사제의 가장 큰 문제는 수석교사가 ‘정원 외 선발’이 아니라는 점이다. 학교 안에 수석교사가 한 명 지정되면 누군가는 그만큼의 수업 부담을 떠안아야 한다는 뜻이다.

B교사는 “수석교사의 경우 보통 1주일에 수업을 6∼10시간 담당하기 때문에 같은 과목 동료 교사들에게 본의 아니게 폐를 끼치는 경우가 많다”며 “교장이나 교감도 수석교사를 ‘마이너스 1’의 개념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제대로 발붙이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수업을 보조해줄 기간제 교사도 없다. B교사 역시 수업 컨설팅부터 교재 개발, 외부 강의는 물론 수업 촬영과 편집까지 모두 혼자 감당하고 있다. 그는 “수업시간이 줄어들더라도 수석교사는 해야 할 중요한 일이 굉장히 많다”며 “이를 도와줄 보조교사가 없어 체력적으로 힘들다”고 토로했다. 교사들은 수석교사제가 제대로 자리잡으려면 업무를 덜어줄 정원 외 기간제 교사 배정이 필수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수석교사제를 바라보는 시선들=아직까지 학교 현장에서 수석교사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은 것 역시 넘어야 할 장애물이다. 수석교사의 역할에 대해 동료 교사들조차 명확히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때로는 “저 사람이 있어서 일이 더 많아졌다”거나 “수석교사가 위화감을 조성한다” 등의 불평이 나오기도 한다.

이런 시선은 수석교사들을 움츠러들게 한다. B교사는 “연장근무수당이나 외부 출장비, 기간제 교사의 시간 외 동원비 등을 모두 수석교사 수당으로 충당하고 있다”며 “솔직히 쓰는 돈에 비해 수석교사로 받는 수당(40만원)은 늘 적지만 수석교사제가 자리잡을 때까지 감수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인원과 예산을 줄이는 교육 당국도 수석교사들을 힘 빠지게 한다. 수석교사는 교감이나 교장 같은 관리직으로 승진하는 대신 수업에 집중하고 싶은 교사들이 선택하는 ‘다른’ 길이다. 그러나 여전히 서열을 중시하는 교단에서는 교장과 교감 중간쯤으로 보는 시각이 있는가 하면 부장급으로 평가하는 시선도 있다.

B교사는 “서울시교육청 관계자가 수석교사를 ‘부장급’이라고 말하는 걸 듣고 충격받은 적이 있다”며 “교육 당국의 인식 수준이 그 정도라면 실망스럽다. 앞으로도 지속적인 장려책과 예산 지원이 없다면 수석교사들의 입지는 점점 더 좁아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수현 황인호 기자 siemp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