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도는 수석교사제… 권한도 없고 역할도 애매모호
입력 2014-01-06 01:29
도입 3년 됐지만 교감-교사 사이에서 갈등
경력 15년 이상의 ‘베테랑 교사’들이 교장·교감 등 관리직 대신 교수법 개발, 신임교사 지도 등을 맡도록 한 ‘수석교사제(master teacher)’가 도입 3년차에도 여전히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교육 당국의 지원 미비로 지위가 불확실한 데다 교장·교감과 일선 교사들 사이에서 역할이 모호해 기존 시스템과 완전히 융화되지 못한 채 부유하는 모양새다.
◇점점 줄어드는 선발 규모=한국중등수석교사회가 지난 2일 전국 시·도교육청의 ‘수석교사 모집 공고 공문’을 취합한 결과 2014학년도 수석교사 모집 인원은 470명으로 최종 집계됐다. 지난해 11월 교육부가 발표한 모집 인원 600명에도 못 미친 숫자다. 최종 선발 인원은 이보다 더 적은 248명에 불과했다. 정부의 수석교사 확대 방침이 무색한 규모다.
숫자 자체보다 중요한 건 감소 추세다. 2014년 선발 규모는 1122명을 뽑았던 2012년에 비하면 5분의 1 수준이다. 2013년도에는 전국 시·도교육청이 990명을 모집했다가 527명만 최종 선발했다.
이런 추세는 수석교사제 도입 당시 “2019년까지 전국 학생 100명 이상인 초·중·고교 8500여곳에 수석교사를 1명씩 두겠다”고 발표했던 교육 당국의 계획과는 거리가 멀다. 지원 미달된 지역도 상당해 수석교사제가 유명무실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커진다.
수석교사들은 교육부가 올해부터 시·도교육청에 선발 인원을 배정하지 않은 데다 수석교사 선발 자격 요건까지 강화한 것을 축소 원인으로 분석한다. 서울의 모 수석교사는 “이대로라면 10년이 지나도 ‘1학교 1배치’는 힘들 것”이라며 “교육개혁을 위해 시작했던 정책이 위축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교육부는 모집 인원과 선발 인원 감소는 일선 학교들의 요청 탓이라고 설명한다. 수석교사의 양보다 질을 높이다 보니 생긴 현상이라는 것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수석교사 1학교 1배치 원칙은 지금도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면서도 “수석교사의 질을 먼저 확보해 달라는 일선 학교의 요청이 있었다”고 감소 이유를 설명했다.
실제로 초·중등 수석교사 80명 모집에 18명만을 뽑은 서울시교육청에서는 선발요건 강화로 인한 탈락자가 많았다.
◇교장·교감과 일반 교사 사이=수석교사제는 도입 후부터 역할이 애매하고 권한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현재 교육부가 정한 수석교사의 역할 중 ‘교사의 교수·연구 활동 지원과 학생 교육’은 초중등교육법에 명시된 교감 직무와 중첩된다. 수석교사의 역할을 두루뭉술하게 정해 놓은 탓에 학교 현장은 수석교사의 역할을 놓고 혼란과 갈등을 겪고 있다. 수석교사는 “교장과 교감의 지원이 부족하다”며 불만이고, 교장과 교감은 “수석교사가 대우만 받으려 한다”며 시큰둥한 입장이다.
수석교사는 일반교사가 맡는 수업시수의 50%가량만을 담당한다. 수석교사 증가는 수업 공백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를 메우려면 그에 맞게 신규 교원이 충원돼야 한다. 하지만 인력과 예산을 담당하는 기획재정부 등은 ‘학령인구 감소’ 등을 이유로 교원 증원을 반대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수업 부담은 동료 교사의 몫으로 떠넘겨지는 경우가 많다. 학교 현장에서 불만이 나오는 이유다. 수석교사의 빈자리를 기간제 교사로 충원하는 방법도 있지만 교육의 질을 보장할 수 없는 데다 비정규직이 양산되는 문제는 남는다.
◇지역별 처우 차이 심해=지역별로 수석교사에 대한 지원의 편차는 크다. 대표적인 것이 수석교사의 업무 경감을 위한 ‘정원 외 교사’ 배정이다. 전국적으로 수석교사의 업무 분담을 위해 정원 외 교사를 배정하는 지역은 경기도와 인천 두 곳밖에 없다. 효과는 컸다. 경기도에서는 이런 지원 덕에 수석교사 모집 경쟁률이 3대 1을 넘었다.
반면 정원 외 교사 배치가 이뤄지지 않는 타 지역에서는 지원율이 갈수록 떨어지는 추세다. 광주에서는 초등 수석교사 20명 모집에 8명, 경북 역시 30명 모집에 12명만 지원했다.
경북교육청 관계자는 “초기에 비해 지원율이 조금씩 떨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내년에는 교사를 추가로 배치하는 등 지원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교육청 차원의 지원만큼이나 교장·교감의 인식도 중요했다. 교직경력 23년차인 A수석교사(52)는 “현행 수석교사제는 ‘로또’에 가깝다. 수석교사가 어떤 교장과 교감을 만나느냐에 따라 역량을 마음껏 펼칠 수도, 아무도 반기지 않는 천덕꾸러기로 전락할 수 있다”며 “좋은 교사가 많이 지원할 수 있도록 토대가 먼저 만들어져야 한다”고 꼬집었다.
황인호 김수현 기자 inhovat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