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테리 보고서 발표 50주년… 아직 끝나지 않은 ‘흡연과의 전쟁’
입력 2014-01-06 01:47
반세기 전만 해도 미국에서는 거의 모든 책상과 테이블에 재떨이가 놓여 있었다. 식당과 사무실은 물론 비행기 안에도 담배 연기가 자욱했다. 스포츠 스타들은 텔레비전 담배 광고의 단골 모델이었다. 당시 미국의 성인 흡연율은 42%였고 심지어 의사들의 절반가량이 애연가였다.
하지만 1964년 1월 11일 발표된 한 편의 보고서는 미국 사회의 변화를 이끄는 대전환점이 된다. 61년 존 F 케네디 대통령에 의해 공중위생국장으로 임명된 루터 테리가 주도한 ‘흡연과 건강’ 보고서다. 보고서의 요지는 간단명료했다. 흡연은 폐암을 유발하고, 미국의 남성 암 사망률을 증가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더불어 담배의 필터가 흡연의 위험을 줄이지 못한다는 경고도 함께 내놨다.
50년대 이후 미국에서는 흡연의 위험성을 보여주는 각종 학술 기사와 보고서들이 많이 생산됐다. 하지만 그때마다 담배 회사들은 담배의 독소를 줄여준다는 필터를 장착한 담배를 생산하는 등 반격에 나섰다. 급기야 54년에는 각 일간지에 “담배와 암은 관련이 없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근거로 한 전면 광고까지 내보냈다.
금연 운동 진영의 압력 속에 미국 정부는 62년 ‘흡연과 건강’에 대한 중립적인 최초의 정부 보고서를 내기로 결정한다. 책임자였던 테리는 자신을 포함한 10명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위원회를 만들고 보고서를 완성했다.
보고서 발표 이후 큰 반향이 일었다. 당장 3개월 만에 담배 소비는 15% 가까이 줄었다. 의회는 65년 모든 담뱃갑에 흡연의 위험성을 알리는 문구를 넣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2년 뒤 미 연방통신위원회(FCC)는 모든 텔레비전과 라디오 방송에 무료로 금연 홍보 광고를 내도록 했다. 담배 광고는 71년에 사라졌다. 이후 비흡연자를 보호하는 각종 조치들이 마련됐고, 담배 자판기도 사라졌다.
이전에 나왔던 수많은 보고서와 달리 ‘테리 보고서’가 더 큰 반향을 일으킨 것은 정부 보고서라는 권위와 참여 인사들의 중립성 때문이었다고 AP통신은 5일 전했다. 당시 10명의 위원 중 5명이 흡연자였고, 테리 자신도 담배를 피웠다. 테리는 보고서 발표 이후 65년 공중위생국장에서 퇴임해 85년 숨지기 전까지 ‘금연 전도사’로 활동했다.
보고서 발표 50주년을 맞는 올해 테리 보고서의 임무는 아직 끝난 게 아니다. 현재 미국의 성인 흡연율은 18%로 크게 줄었지만 여전히 흡연자는 4300만명 이상이다.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해마다 44만3000명이 흡연으로 인해 조기 사망하고 있다.
맹경환 기자 khmae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