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김영석] 응답하라 1998

입력 2014-01-06 01:32


#장면1=16년 전이다. 야당 국회의원 후보는 1998년 봄 대구 달성 거리를 누볐다. 20대 청년에서 촌로(村老)를 가리지 않고 대화하고 악수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로 도탄에 빠진 나라를 구하겠다는 각오를 담아서다. 한 할머니는 꼬깃꼬깃 접은 1000원짜리 지폐를 악수 속에 감춰 말없이 건넸다. 야당 후보는 이를 ‘국민에게 진 빚’이라고 했다. 그날 밤 기자를 찾아왔다. 상대 후보가 돈을 뿌리는데 왜 취재를 하지 않느냐면서다. 어눌하지만 직설적인 논리를 전개하며 눈물까지 글썽였다. 그리고 다시 거리로 돌아갔다. 금권과 관권이 아닌 ‘국민 속으로’ 찾아갔다. ‘달성 대첩’을 승리로 이끈 뒤 국회에 선 그의 일성은 “국민과 아픔을 함께하는 정치”였다. 그리고 16년이 흐른 2014년 그는 대한민국 대통령이다.

#장면2=지난해 가을과 겨울 대한민국은 한 드라마에 열광했다. ‘응답하라 1994’다. 지방 출신 대학생들의 서울 상경기를 다룬 어찌 보면 ‘안 봐도 비디오’형 청춘 드라마다. ‘응답하라 1994’에도 1997년 IMF 사태에 이어진 1998년이 있었다. 주인공 성나정은 고려증권 합격 취소 통보를 받았다. 백번 이상 두드려 겨우 얻은 마지막 직장을 잡기 위해 결혼까지 포기했다. 친구 조윤진은 월급도 받지 못한 채 회사를 다녔다. 주식 투자에 실패한 나정의 아버지는 프로야구팀 코치직에서조차 쫓겨났다. 2014년 새해를 맞은 고된 20대 취업 준비생과 40∼50대 가장들의 모습 그대로다. 그러기에 우리는 1998년의 나정이와 윤진이를 통해 과거와 공감했고, 2013년 겨울 그들을 통해 현재와 소통했다. 힘들지만 그래도 살아가야 하는 미래를 위한 성찰의 기회도 얻었다. 그러기에 그 흔한 상 하나 받지 못한 드라마에 우리는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장면2-2=‘응답하라 1994’에 열광하고 있던 그 시기 대한민국 열차는 멈춰 섰다. ‘민영화 반대’를 앞세워 22일간 진행된 철도노조 파업은 정부의 완승으로 끝났다. 외형상으론 철도노조의 무리한 파업에 대한 국민 반감, 정부의 원칙 대응, 여야 중진 정치인의 힘이 부각됐다. 그러나 철도노조 파업은 국민들의 가슴을 또 한번 놀라게 했다. 방향성의 옳고 그름을 떠나 민영화라는 단어는 1998년 우리 가장들을 가장 두렵게 만들었던 구조조정과 대량 해직의 아픔을 가슴 깊은 곳에서 다시금 꺼내보게 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각 부처 대변인과 만난 자리에서 민영화라는 단어 사용에 대한 주의를 환기시켰을 정도다. 한 대학생으로부터 시작된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대자보 열풍은 현재진형형이다.

#장면1-2=지난해 정치권의 최대 화두는 국가기관 대선개입 의혹이었다. 개인적으론 대통령의 말 한마디면 해결될 수 있었던 사안이다. 일년 내내 계속된 인사 파행과 기초연금과 민영화 논란 등도 대통령의 ‘말 한마디’가 존재했다면 상황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청와대가 ‘자랑스러운 불통’을 계속 고집하기엔 2014년 현실은 만만치 않다. 국민들은 대통령이 말하는 ‘북극성’에 있지 않고 1998년 IMF를 다시 얘기하는 현실에 발을 딛고 서 있다. 대통령을 지지했던 51.6%마저 ‘불통’을 얘기하는 형국이다. 다행스럽게도 6일 대통령의 신년 내외신 기자회견이 있다. 수석비서관이 아닌 국민(기자)을 바라보고서다. 국민들은 기대한다. 국민 속으로 향했던 야당 후보의 초심을. 이제 응답해야 할 때다. 1998년 대구 달성 거리에서 1000원짜리 지폐를 건네던 할머니에게 진 빚을 ‘말’로 화답할 때다.

김영석 정치부 차장 ys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