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우선덕] 진지한 질문
입력 2014-01-06 01:32
지하철로 하는 출퇴근 초창기에 시행착오가 몇 있었다. 지하철 타는 데에 무슨 시행착오씩이나? 가령 이런 것이다. 맨 처음 알게 된 출입구로 다닌 게 반년 이상. 몇 걸음 가면 가파른 계단을 상쇄해줄 에스컬레이터가 있다는 사실을 누가 알려줘서야 알았다.
세상에, 알던 쪽 말고 다른 데는 다 에스컬레이터가 있었다. 도착역도 마찬가지로 몸만 살짝 돌리면 에스컬레이터가 있는데 한눈 한번 팔지 않아 두 개의 층계참이 있는 높은 계단을 다리무릎 아파하며 오르내렸다. 맨 처음 안 출입구만 정답인 줄 알았던 것이다. 인생길에 정답이란 게 어디 있다고 말이다.
선배 소설가에게 출입구 이야기를 했더니 후배 덕분에 처음 알았다며 이제 편하게 다니게 됐다고 행복해한다. 소설가족이라서 답답한 건 아니다. 이렇듯 막힌 이들은 어디든 존재하는 법이다. 그런데 선배, 누가 임신부인지를 만삭이 아니고는 알 수 없더라고요. 심사숙고하여 자리양보를 했는데 성공한 적이 한번도 없어요. 어찌나 미안하던지! 그러니 임신부를 알려주는 표시를 달게 하면 어떨까요. 오, 우 선생 아주 좋은 의견이야! 선배의 칭찬에 신나서 그동안 해온 생각을 피력한다. 아주 예쁜 색깔과 모양으로 그걸 다는 걸 하나도 창피하게 여기지 않게 만드는 거죠. 언론은 항상 홍보하여 사람들 뇌리에 완전히 박혀 있게 하고요. 임신부 때 힘도 들지만 얼마나 서러운 게 많고 속상한 게 많아요. 그래그래, 정말 기특한 생각이야, 우리 당장 그런 운동을 시작합시다!
혹시나 하여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기왕에 배지가 있다. 보건소에 가면 임신부 배지를 준단다. 홍보가 안 되어 사람들이 대부분 모르는 데다 여인과 그 복부에 태아가 웅크린 모습이 선으로 되었지만 구체적이다. 그런 배지를 얼굴 뜨겁게 어느 임신부가 달겠는가. 근래에 다시 검색해 보니 4년 전과 달리 훨씬 상징적인 도안으로 바뀌었다. 안목에 의하면 결론은 마찬가지다. 그런 배지를 어느 임신부가 달겠는가.
가끔 전화를 걸어와 싱거운 질문을 하는 남자 소설가가 얼마 전에도 전화를 해왔다. 우 선생, 내가 하나 꽉 물어봅시다. 그 왜, 특히 배가 부르지 않은 초기 임신부도 이용할 수 있게 많은 협조를 해달라는 지하철 방송 들은 적 있어요? 모르는 것 빼고 다 아는 우리 우 선생께선 배가 부르지 않은 초기 임신부 구별하는 비법을 알고 있나 해서요. 아, 나는 진정 협조하고 싶어 진지하게 묻는 거라니까요.
우선덕(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