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정국 ‘태풍의 눈’ 개헌 논의] “유력 차기주자 없는 지금이 적기”… 개헌론 솔솔
입력 2014-01-04 01:30
올해 정치권의 개헌 추진 움직임은 태풍의 눈이다.
개헌 논의가 국민의 지지라는 추진력을 등에 업을 경우 정국의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며 한국 정치 구조를 근본적으로 재편하는 블랙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국민적 동의를 얻지 못한다면 과거 정치권의 개헌 논의처럼 반짝 빛을 발하다가 급속히 사그라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치권에서 아무리 개헌을 주창해도 민심이 따라주지 않으면 허사다. 개헌 찬성론자나 반대론자 모두 개헌 논의의 성패가 결국 민심에 달려 있다는 데 이견이 없다.
◇이미 닻 오른 정치권 개헌 움직임=대표적 개헌론자인 강창희 국회의장은 지난 2일 의장 직속 ‘헌법자문위원회’ 위원장에 김철수 서울대 명예교수를 내정했다. 올해 신년사에서 “개헌문제를 본격적으로 공론화해야 한다”며 “헌법자문위를 발족시키겠다”고 밝힌 지 하루 만이다. 헌법자문위는 이달 중순 출범해 오는 5월까지 헌법 개정안을 내놓을 방침이다. 김 명예교수는 2008년 김형오 국회의장 당시 ‘헌법연구자문위’ 고문을 지내면서 개헌안 연구보고서 작성에 관여했던 만큼 조문화 작업을 마친 구체적인 개정안이 나올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여야 의원 120여명이 참여하는 ‘개헌추진 국회의원모임’도 지난달 27일 국회에서 워크숍을 열고 개헌 공론화 작업에 나섰다. 새누리당에서는 정몽준 이재오 남경필 이주영 등 중진의원이 대거 참여했다. 민주당에서는 박병석 국회부의장과 이석현 이미경 김성곤 신기남 원혜영 추미애 의원 등이 가세했다. 전체 국회의원이 300명인 점을 감안하면 이미 40%가 개헌 논의에 발을 담근 것이다. 올해 여야 전당대회에서 개헌론자들이 각 당 지도부에 진입할 경우 개헌 논의가 급물살을 탈 수도 있다.
개헌추진 국회의원모임의 한 의원은 3일 “올해 상반기 헌법개정안을 마련해 오는 6월 4일 지방선거에 개헌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방선거 때 동시에 실시하면 헌법 개정만을 위한 국민투표를 별도로 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점이 있다. 하지만 시기적으로 너무 빨라 현실성이 없다는 반론이 더 우세하다.
◇유력 차기 주자 없어 개헌 논의 적기=개헌에 유리한 조건들은 이미 마련돼 있다. 우선 내년에 전국 단위 선거가 없어 기회다. 개헌을 논의할 충분한 시간이 있는 것이다. 개헌 논의는 6월 지방선거 이후 본격화돼 내년에 마무리하는 시간표가 가장 유력하다. 최소 1년 이상의 시간이 준비된 상황이다. 개헌론자들은 새 헌법으로 2016년 총선을 치르겠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자력으로 대권을 거머쥘 수 있는 유력 정치인이 없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호재다. 대권이 손 앞에 있는 정치인이 개헌에 동의할 리는 만무하다. 이명박정부 당시 개헌 논의가 불붙지 못한 것도 ‘박근혜’라는 유력 차기 주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춘추전국 시대다. 독자적으로 대권을 차지할 만한 독보적 인물이 아직은 보이지 않는다. 강력한 개헌 반대론자도 아직은 없다. 2% 부족한 잠룡들이 분권형 대통령제에 대타협하는 시나리오가 현실화되는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는 것이다.
◇비판도 만만치 않아…청와대 반대도 변수=의원내각제를 가미한 분권형 대통령제가 등장할 경우 의회 해산이 반복되고 정치가 더 혼란스러울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북한이라는 현실적 위협에 단호하게 대응하는 데는 권력이 집중된 대통령제가 더 낫다는 지적도 무시할 수 없다.
분권형 대통령제가 결국은 권력 나눠먹기로 귀결될 것이라는 반론은 설득력 있다. 총리를 이어받을 수 있다는 잠룡들의 정치적 계산이 개헌론의 배후라는 주장이다. 이들이 장기간 권력을 분점하는 것이 오히려 정치 발전의 장애가 될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분권형 대통령제에서 내치를 책임지는 총리를 선출하는 주체가 국민이 아니라 국회의원이라는 것도 약점으로 거론된다.
청와대의 선택도 중대 변수다. 현재로선 부정적인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개헌 움직임이 본격화되면 국정의 모든 이슈가 개헌에 가려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정 주도권 약화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청와대가 개헌에 반대 입장을 취할 경우 개헌 논의는 좌표를 잃고 표류할 수도 있다. 결국 개헌 논의의 운명은 국민 여론이 쥐고 있다. 그래서 여론의 지지를 얻기 위한 개헌 찬성·반대론자들의 대결이 올 한 해 정국을 뜨겁게 달굴 것으로 전망된다.
하윤해 권지혜 기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