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고을’의 수호천사… 이들이 나누는 건 재주가 아니라 사랑입니다

입력 2014-01-04 01:53


▶ 장면 1

막내 영민이의 돌잔치


걸음마를 시작한 영민이가 첫 생일을 맞은 지난달 11일 오전 광주 우산동 새싹지역아동센터 강당. 난생 처음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주인공이 등장하자 돌떡과 예쁜 꽃바구니, 푸짐한 음식들이 오른 돌 잔칫상에 환한 촛불이 켜졌다. 곧이어 축가를 부르고 돌잡이를 하는 순서까지 낯익은 광경이 펼쳐졌다. 하지만 익숙한 몸짓으로 영민군 생일잔치를 준비한 이들은 여느 돌잔치에서나 보던 이벤트 회사 직원들이 아니었다. 어려운 살림 탓에 막내아들의 돌잔치를 포기하려다 광주재능기부센터에 도움을 청했던 영민이의 부모는 생면부지의 이웃들로부터 평생 잊지 못할 선물과 감동을 받았다.

▶ 장면 2

사람 빌려주는 도서관


지난해 11월 23일 오후 광주 학동 푸른길공원 인근 재능기부센터 남광주점. 행사에서 ‘사람책’ 역할을 맡은 5명의 직업은 대학 교수부터 특허사무소 직원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이들은 ‘인생의 차이를 만들어주는 독서법’과 특허 업무, 각종 발명품이 나오게 된 과정 등에 관해 생생하고 유익한 정보를 들려줬다. 10년 넘게 면접에서 수없이 떨어졌다가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10여개의 자격증을 따낸 뒤 취업에 성공한 사연도 곁들여졌다. 사람책으로서 대여된 각 분야 강사들은 신청자 한 명당 40분씩의 시간을 할애해 진솔한 대화를 나눴다. 청소년들은 인생 선배이자 전문가로부터 다양한 경험과 올바른 인생관 등을 배우는 소중한 기회를 가졌다.

광주재능기부센터가 훈훈한 지역공동체를 만드는 ‘수호천사’가 되고 있다.

이 센터는 2012년 2월 300여명이 참석한 발기인대회에 이어 같은 해 6월 비영리 사단법인으로 설립 허가를 받아 출범했다. 다재다능한 개인적 역량을 사회적으로 공유하고 더 나아가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활용하자는 공감대가 센터 출범의 씨앗이 됐다. 너와 나의 뛰어난 재능을 한데 모아 누구나 맘 편히 살 수 있는 따뜻한 지역사회를 만들자는 것이다. 센터는 출범 이후 의료, 법률, 전문기술, 미디어·언론, 마케팅·경영, 사회복지, 문화예술, 체육·건강 등 줄잡아 9개 분야에서 활발한 재능기부와 나눔 활동을 펼치고 있다. 한 사람 또는 한 가정을 위한 음악회와 ‘사람을 빌려주는 도서관’, 편안한 해우소 만들기, 각종 의료지원 사업 등이 대표적이다.

재능기부센터 하상용(53) 공동대표는 “재능 기부를 약속한 각 분야 전문가들이 지금까지 1500여명에 이른다”며 “설립 1년여 만에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이 센터의 구심점인 하 공동대표는 한때 광주·전남지역에서 대형 할인매장 ‘빅 마트’ 10여개를 운영하던 사업가 출신이다. 그는 “서울과 경기도 등에서 택배를 보내거나 언제든 불러달라고 전화를 걸어오는 분들이 적지 않다”며 “호주머니에서 돈을 꺼내야만 기부를 하는 게 아니다”고 강조했다.

실제 재능기부의 영역은 무한대에 가깝다. 기본적 센터 운영 비용은 매달 5000원에서 10만원을 내는 400여명의 후원금으로 운영된다. 쌀과 중고 전자제품, 장난감, 이불, 생활용품 등 물적 기부도 활발하다. 그러나 이보다는 자신의 탁월한 재능과 물리적 공간을 기꺼이 내놓는 이들이 훨씬 많다.

외국어 구사 능력을 발휘해 번역이나 통역을 해주겠다고 나서는가 하면 다문화가정을 위해 자신의 노래방을 기꺼이 빌려주겠다고 나선 회원도 있다. 금동, 학동, 월산동, 용봉동 등 광주 도심 각지에 들어서 기부물품 보관창고 역할도 하는 6곳의 사무실은 건물주 기부로 월세를 한푼도 내지 않는다.

회원들은 밴드와 카카오스토리, 페이스북 등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나 인터넷 카페를 통해 긴밀히 연락을 주고 받으며 상황에 따라 재능기부 대상과 장소를 물색한다.

광주여성필하모닉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정기적으로 광주지역 다문화가정 자녀들을 대상으로 각종 악기 레슨을 무료로 해주고 있다. 재능기부센터는 광주시 남북교류협의회와 함께 털실로 뜨개질한 목도리와 모자 등을 북녘의 어린이들에게 보내는 운동도 펼치고 있다. 지난해 11월 16일에도 1000여명의 시민들이 한데 모여 뜨개질을 하는 행사를 벌였다. 쓰지 않는 책가방 등 학용품을 모아 동남아시아 빈곤 국가에 보내기도 한다.

재능기부센터는 지난달 28일 광주시청 3층 대강당에서 2013년 마지막 ‘재능나눔 문화 페스티벌’을 가졌다. 노래와 춤 등 다양한 공연이 선보인 이 행사의 수익금은 올해 북한에 의약품을 보내고 필리핀의 태풍 피해 이재민들을 돕는 데 활용된다. 자세한 내용은 광주재능기부센터(062-431-0918)로 연락하면 알 수 있다.

광주=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