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라동철] 왜 사회적경제인가

입력 2014-01-04 01:28


지난달 20일 아침 미국 오클랜드의 한 전철역 근처에서 시위가 있었다. 노숙인과 청년, 실직자들이 실리콘 밸리로 가는 구글의 통근버스를 가로막고 벌인 항의시위였다. 시위대가 펼쳐든 현수막에는 “너희 세상은 여기서 환영받지 못한다” “꺼져라 구글” 등 적개심이 묻어나는 글이 적혀 있었다. 같은 시간대 오클랜드의 다른 전철역 부근에서도 애플과 구글의 통근버스를 가로막고 비슷한 시위가 벌어졌다.

애플과 구글은 혁신과 창의경영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세계 굴지의 기업이다. 스티브 잡스와 아이폰의 기업 애플은 2012년 기준 연간 매출이 1565억 달러(약 164조원), 순이익이 417억 달러(43조원)에 달한다. 세계 최고의 인터넷 검색 서비스 기업인 구글도 같은 해 기준 매출이 522억 달러(54조원), 순이익이 107억 달러(11조원)였다. 이런 기업들이 왜 환영받지 못하는 것일까. 시위대는 실리콘 밸리에 몰려 있는 정보기술(IT) 기업들로 인해 자신들의 삶이 더 어려워졌다고 주장한다. 실리콘 밸리에서 일하는 고소득 전문가들을 수용하기 위해 인근 지역에 재개발 붐이 일면서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아 기존 거주자들과 경제적 약자들이 내쫓기고 있다는 것이다.

이 기사를 접하고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제로섬(zero-sum)이란 단어였다. 나눠 가질 파이(몫)가 한정돼 있다면 누군가에게 이익은 누군가에게는 손해가 된다는 게임이론이다. 애플, 구글 등 거대 IT기업의 등장과 성장은 생활에 엄청난 편리를 가져다 줬지만 그 그늘도 짙다. 그들의 막대한 이윤은 창의와 혁신의 대가이기도 하지만 ‘부당한 경쟁’의 결과물이라는 지적도 있다. 원가 절감을 위한 하도급 회사 납품단가 후려치기, 규모의 경제를 활용한 경쟁사 죽이기, 높은 이윤을 가능케 하는 고가 가격 정책 등은 ‘혁신’ ‘효율’이란 포장 뒤에 숨겨진 민낯일 수 있다.

‘기업의 목적은 이윤추구’라는 말은 오래된 명제지만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위해서는 이것도 재검토가 필요하다. 높은 조세 부담을 바탕으로 사회안전망을 촘촘하게 짠 국가라면 기업의 자유로운 경영활동과 이윤추구에 토를 달 이유가 없다. 하지만 빈부격차가 심하고 중간소득계층까지도 평생 주거, 교육, 의료, 노후생활 등 삶의 가장 기초적인 문제를 고민해야 하는 사회라면 사정이 다르다. 기업 경영활동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고 창출된 이윤이 각 경제 주체에게 공정하게 분배되는 시스템을 만들어가야 한다. 이윤추구가 최고의 덕목이 아니라 참여 주체들의 필요와 요구를 해결하고 각종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게 목적인 새로운 경제모델을 활성화하는 것도 방법이다. 최근 들어 주목받기 시작한 ‘사회적경제’는 그 대안이 될 수 있다.

사회적경제는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자활기업 등을 통해 새로운 일자리와 이윤을 창출하는 동시에 사회적 가치도 추구하는 경제 영역이다. 이들 기업은 주거 안정, 노후 안정, 공동체 회복, 지역 재생, 일자리 창출, 영세상인 자립, 합리적 소비, 먹거리 안전, 지속가능한 환경 등 각종 사회문제를 해결할 가능성도 갖고 있다. 양극화와 경제 주체 간 갈등을 피하기 어려운 제로섬 경제를 보완할 수 있는 상생모델인 셈이다. 갈 길은 멀다. 지속 가능한 모델인지도 아직 검증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장점이 분명히 있는 만큼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들이 이들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해 줄 필요는 있을 것 같다.

너무 이상적인 얘기라는 핀잔이 쏟아질 수 있어 망설였지만 너도나도 ‘희망’을 얘기하는 정초(正初)라 눈 질끈 감고 넋두리인 양 늘어놔봤다.

라동철 사회2부 선임기자 rdch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