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의 영성] 목표는 내면의 자유

입력 2014-01-04 01:28 수정 2014-01-04 15:10

사도 바울은 하나의 목표를 성취하면 또 다른 푯대를 세우고 이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하는 삶을 살았는데(빌 3:13∼14) 원로 수도사 디오스코루스가 그렇게 살았다. 그는 매년 특별한 것 한 가지만을 결심했다. 예를 들자면 “금년에는 말을 하지 않고 침묵하며 살겠다”거나 “금년에는 요리한 음식을 먹지 않겠다” 등의 결심을 했다. 한 가지 목표를 달성하면 다른 일을 시작했고 이렇게 매년 덕을 늘려갔다.

어떤 종류의 덕을 쌓을 것인지

사막 교부들은 수도생활에서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강조했다. 안토니는 제자들에게 “쇳덩이를 망치로 내려치는 사람은 누구든지 먼저 그것으로 무엇을 만들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낫을 만들 것인지 칼을 만들 것인지, 아니면 도끼를 만들 것인지를 말이다. 이와 같이 우리도 어떤 종류의 덕을 쌓을 것인지 먼저 결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헛수고를 하게 된다”고 가르쳤다.

사막 교부들의 목표 설정에 대한 가르침을 배우고 이를 처음으로 기록한 것은 루마니아 출신의 수도사 존 카시안이다. 청년 시절 친구 게르마누스와 같이 이집트 스케테 사막을 찾은 카시안에게 원로 수도사 모세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기술과 훈련에는 알맞은 목적과 목표가 있습니다. 뜨거운 햇빛 아래 끊임없이 쟁기질을 하는 농부도, 위험한 바다를 건너 무역하는 사람도, 오랜 행군과 전쟁에 참여하는 군인도 목표를 가지고 있기에 어떤 위험과 대가도 감수하면서 노력합니다. 이처럼 수도생활에도 목적과 목표가 있으며 우리는 그것을 위해 지칠 줄 모르고 노력합니다.”

그리고는 수도사인 두 청년에게 수도생활의 목적과 목표가 무엇인지를 물었다. 두 청년은 머뭇거리다가 하나님의 나라,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 목적이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모세에게는 이 대답이 만족스럽지 못했다. 영생은 궁극적인 목적이지만 그것을 이루기 위해 오늘 지향해야 할 직접적인 방향, 즉 측정 가능한 표준을 제시하는 목표를 말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모세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필요한 중간 목표가 마음의 순결이라고 가르쳤다. 이 마음의 순결을 얻기 위해 수도사들은 세상의 모든 부귀와 즐거움을 버리고 금식, 철야, 노동, 궁핍, 독서 등 모든 덕행을 행한다고 교훈했다. 모든 수도생활은 이 한 가지를 이루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여러 가지 영적 노력들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도구들이다.

모세뿐 아니라 사막의 어느 수도사든지 한결같이 마음의 순결이라는 공통된 목표를 가졌다. 그것은 수도자가 세속을 떠나 사막으로 물러났을 때 겪는 공동의 경험에 기초한다. 은수사(隱修士)들은 사면이 흙벽으로 된 작은 수실에, 회수도사들은 봉쇄된 수도원 벽 안에 자신의 몸을 감금시킨다. 그러나 얼마 후 수도사들은 몸은 세상을 떠났지만 마음 안에는 아직도 자신이 버리지 않은 것들이 쌓여 있음을 깨닫는다.

마음은 잡념들로 산만하고 기도의 자리에 앉았지만 기도에 집중할 수 없게 만드는 온갖 과거의 기억들, 두고 온 세상을 헤매는 초라한 자신을 보았다. 모든 것을 포기했지만 아직 더 포기할 것이 남아 있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그들은 모든 수도생활의 승패는 이 생각들을 어떻게 통제하고 절제하는가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원로 파프누티우스는 존 카시안에게 “오직 몸만을 포기한 것은 소용이 없습니다. 그것은 단지 애굽으로부터 나온 몸에 불과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하고 하늘의 만나를 먹으면서도 생선, 오이, 참외, 부추, 파, 마늘 등의 애굽 음식을 그리워했고 결국 그들은 약속된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우리도 그들처럼 세상을 부인했으나 마음으로는 다시 과거에 추구하고 갈망하던 것으로 돌아갑니다. 육적인 포기 즉 애굽을 떠나는 것은 무가치합니다. 더 높고 더 값비싼 것은 마음에 의한 포기입니다. 만일 어느 누가 복음적 완전과 사도적 사랑의 높은 정상에 이르기에 실패했다면, 그 원인은 그가 마음을 지배하는 교만과 조급함을 고치지 못하고 과거의 죄악된 행동들, 절제되지 않은 길들을 계속 걸어갔기 때문일 것입니다”고 말했다. 파프누티우스는 이것을 제2의 포기라고 부르며 과거에 대한 기억들과 영혼과 육을 지배하는 정욕을 버리라고 가르쳤다.

내면의 자유와 행복

4세기 후반에 이르러 사막 교부들은 마음을 더럽히는 생각들을 탐식, 호색, 돈사랑, 분노, 우울, 권태, 헛된 영광, 교만으로 분류했다. 그중 첫 세 가지는 몸, 그 다음 세 가지는 마음, 마지막 두 가지는 영과 관련된 것이다. 원로 세라피온에 따르면 모든 수도사들은 이 여덟 가지 중대한 악들이 자신들을 공격하고 있음을 확신하고 있었다.

이것들은 고대 수도사들뿐만 아니라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를 사로잡는 것들이기도 하다. 그것들과 더불어 싸우던가, 아니면 되는 대로 내버려두는가의 차이점이 있을 뿐이다. 만일 우리가 마음의 순결을 목표삼고 수도사들처럼 집중된 노력을 실천한다면 그들이 누린 내면의 자유와 행복을 우리도 얻게 될 것이다.

김진하<백석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