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기자-이성규] 피해 구제안 ‘뻥튀기’… 동의의결제 왜곡하는 공정위
입력 2014-01-03 01:34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1일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불공정행위를 저지르다 적발된 네이버가 1000억원의 소비자 후생 제고 및 피해 중소기업 구제안을 내놨다고 밝혔다. 공정위가 동의의결제를 적용하는 대신 과징금 처분을 내렸을 경우 예상됐던 500억원 안팎의 과징금에 비해 더 큰 액수였다.
아니나 다를까 ‘1000억원’은 공정위가 부풀린 숫자인 것으로 2일 드러났다. 네이버는 공정위 협의 과정에서 중소사업자 및 소비자보호 공익법인에 200억원을 출연하는 등 모두 500억원의 구제안 초안을 공정위에 제출했다. 하지만 공정위는 네이버가 지난해 10월 말에 이와 별개로 이미 발표한 중소상공인 희망재단 출연금 500억원을 포함시켜 구제안을 1000억원짜리로 만들었다. 중소기업과의 상생차원에서 만들어진 중소상공인 희망재단 건립이 ‘네이버 면죄부’에 억지로 포함된 것이다.
실제 이날 공정위 홈페이지에 공개된 40쪽 분량의 네이버의 ‘동의의결 대상행위 및 시정방안 공고’에 포함된 상생지원 이행계획 세부안에는 중소상공인 희망재단과 관련된 500억원의 계획은 포함돼 있지 않았다. 네이버 관계자는 “우리가 처음 제출한 안은 500억원짜리였다”며 “공정위가 1000억원은 돼야 한다는 입장이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공정위 관계자는 “확인해줄 수 없다”고 했다.
동의의결제의 핵심 취지는 불공정행위자의 자발적인 시장질서 회복 노력이다. 공정위가 이처럼 보여주기식 부풀리기를 한다면 이후 동의의결안 시행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만약 네이버 시정안이 미흡하다고 판단된다면 공정위는 40일간의 외부 의견수렴 과정을 거친 뒤 폐기하고 다시 처벌 절차로 돌아가면 된다.
이번 사건이 동의의결제의 첫 사례인 만큼 성공적으로 마치고 싶은 것이 공정위가 바라는 바일 것이다. 하지만 공정위가 이번 사건을 동의의결제의 시금석으로 삼고 싶다면 잠재적 피해자인 소비자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먼저다. 공정위는 이날부터 네이버의 동의의결 잠정안에 대한 의견수렴 절차를 진행하고 있지만 홈페이지에 그 흔한 안내 팝업창 하나 만들어놓지 않았다.
세종=이성규 경제부 기자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