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화려하고 음울한 세속… 당신의 처세술은?
입력 2014-01-03 01:29
세상물정의 사회학/노명우/사계절
대학 울타리 안에 머물던 사회학자가 세상 속으로 뛰어 들어와 사람들에게 말을 건다. 만만치 않은 세상살이 어떻게 하고 있느냐고. 값싼 힐링이나 비겁한 냉소주의로 버티기엔 힘들지 않으냐고 말이다. 그 주인공은 자신을 ‘사회로부터 고립당할 위험에 처한 사회학자’로 소개하는 노명우(48)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다. 지난해 독신남 사회학자로서 개인적 삶의 경험을 토대로 쓴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를 통해 ‘자전적 사회학’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던 그가 이번에는 ‘세상물정의 사회학’을 들고 나왔다.
이 생소한 용어를 그는 이렇게 정의한다. “사회학은 삶에 대한 근거 없는 희망이나 ‘하면 된다’와 같은 사실상 거짓말에 가까운 헛된 기대가 아니라 철저하게 삶의 리얼리티에 뿌리를 두고 있는 학문이다. 자신의 처지를 공통감각과 연결시키지 못하는 한, 자신의 삶에 대한 절실하고 치열한 생각은 팔자타령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팔자타령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삶에 대한 개인의 생생한 느낌과 때로는 냉정한 사회학이 균형을 이루는 시도에 ‘세상물정의 사회학’이라는 이름을 부여한다.”(프롤로그)
이것이 필요한 이유는 좋은 삶을 살기 위해서다. 그러기 위해선 자기계발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처세술’이 아니라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먼저 알아야 한다. 그런 후에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어술과, 좋은 삶을 훼방하는 이들을 제압하기 위한 공격술을 갖춰야 할 것이다.
저자는 먼저 상식, 명품, 프랜차이즈 등 우리가 쉽게 생각해볼 수 있는 것들로부터 출발해 우리가 사는 세속 사회를 들여다본다. 그가 지하철, 버스, 카페 등에서 만난 보통사람들의 목소리를 토대로 질문하고, 자신의 지식과 기존 사회학 이론들을 접목해 답을 찾아 나간다.
그가 다루는 세속의 삶의 영역은 불안, 이웃, 종교, 취미, 섹스, 자살, 노동, 인정, 죽음에 이르기까지 넓고도 넓다. 그 속에서 우리가 접하는 분노와 좌절, 기쁨, 소소한 감정들을 한 사람의 것으로 버려두지 않고 우리 사회의 공통적인 것으로 끄집어내 직시하고, 그 냉혹한 현실이 개인의 잘못이 아님을 보여준다.
이 작업을 위해 그는 그리스신화 중 사자(使者)의 역할을 한 헤르메스가 되기를 자처한다. 가령 고달픈 임금 노동의 문제를 언급할 때는 ‘자본론’을 쓴 칼 마르크스를 불러낸다. 텔레비전 토론 프로그램이나 신문 칼럼 때문에 분통을 터뜨리는 사람들을 위해 독일의 사회학자 위르겐 하버마스의 ‘공론장의 구조변동’, 미국의 언어학자이자 비판적 지성인 노엄 촘스키가 에드워드 허먼과 함께 쓴 ‘여론조작’을 소개하는 식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상위를 벗어난 적 없는 학생들의 학업능력수준, 대학진학률이 81.9%에 육박할 뿐 아니라 인구 1만명 당 박사학위 취득자가 2.1명(2009년 기준)이나 되는 지식사회 대한민국. 그런데 왜 여전히 지하철 안에선 ‘싸가지 없는 애들’과 ‘추잡스런 중년’ ‘나잇값 못하는 늙은이들’을 만나야 할까. 저자는 ‘칸트의 교육학 강의’, 클라이브 해밀턴의 ‘성장숭배’를 통해 성장과 성숙이 일치하지 못하는 한국 사회의 현실을 고스란히 까발리며 이것이 우리의 실제 삶의 현장임을 확인시킨다. 분야별로 자기만의 답을 찾고자 하는 독자들을 위해 저자는 책 뒷부분에 각 장에서 언급한 책들에 대한 짤막한 소개를 달았다.
“어둠 속에서 세속의 리얼리티와 마주칠 때 그리고 ‘콜드 팩트(cold fact)’를 찾아낼 때 우리는 비로소 힐링의 대상은 나의 마음이 아니라 각자가 살고 있는 사회임을 깨닫게 된다. ‘세상물정의 사회학’은 죄가 없는 개인들이 죄가 많은 사회에게 불만을 말하는 애처로운 시도이다.”(에필로그)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