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해지 재테크’ 안하면 바보?
입력 2014-01-03 02:43
인터넷, TV, 전화 등의 결합 상품을 판매하는 통신사를 대상으로 소비자들의 ‘해지 재테크’가 유행하고 있다. 경쟁사에 고객을 뺏길까 우려하는 통신사들이 계약을 해지하려는 고객에게 대폭 요금인하와 많은 상품 혜택을 주기 때문이다.
“계약 해지하려고요” 전화 한 통이면 훨씬 싼 요금에 상품권 보너스까지 제공돼 ‘해지 전화’ 안 하는 충성 고객은 오히려 손해를 보는 실정이다. 이런 행태는 소비자 차별대우여서 단속 대상이지만 정부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서울 강북의 주부 김모(50)씨는 인터넷·TV·집전화를 합쳐 월 3만5000원에 10년 넘게 사용해 오다 최근 다른 통신사로부터 더 나은 조건을 제시받았다. 통신사를 옮기기로 결정한 김씨는 기존 업체에 해지를 통보했다가 “월 1만5000원에 똑같은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뜻밖의 제안을 받았다. 그동안 3년마다 재약정을 해 왔지만 한번도 듣지 못했던 가격이었다. 월 1만5000원에 기존 업체와 계약을 연장한 김씨는 2일 “내가 해지 전화를 안 했다면 지금도 월 3만5000원씩 내고 있었을 것”이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경기도 일산의 전모(24·여)씨도 2012년 10월 대기업 통신사와 인터넷·TV·집전화 결합상품 3년 계약을 맺었다. 계약 기간이 2년 가까이 남았던 지난해 11월 다른 통신사로부터 가족 휴대전화 3대를 결합하면 인터넷을 무료로 사용하게 해준다는 제안을 받았다. 전씨가 이를 받아들여 기존 통신사에 해지 통보를 하자 업체 측은 “계약을 유지하면 27만원어치 상품권을 주겠다”고 제안했다.
인천에 사는 김모(36)씨도 2011년 9월 계약을 1년 남긴 상태에서 통신사에 해지를 통보했다가 TV요금 월 2000원 할인, 스포츠채널 무료 구독(월 2000원) 등의 혜택을 제공받았다. 김씨는 “보통 서비스업체들은 장기 고객일수록 혜택을 더 챙겨주기 마련인데 통신사는 타사 고객 빼앗기에만 혈안이 돼 있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인터넷에는 각 통신사별로 해지를 통보할 경우 가격을 어느 정도까지 할인해주는지 알려주는 글들이 숱하게 퍼져 있다. ‘해지 통보하면 몇개월간 TV요금이 무료다’ ‘백화점 상품권을 보내준다’ ‘인터넷 전화 가입비를 면제해준다’ 등의 해지 재테크 노하우가 빼곡히 적혀 있다.
전기통신사업법은 이용자를 차별대우하거나 서비스 해지를 막아 이용자 이익을 저해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 관계자는 “이용자가 해지를 원할 때 이를 막는 것은 이용자 이익을 침해하는 것이기 때문에 단속 대상이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방통위가 이 문제로 현장 점검에 나선 적은 없다. 방통위 관계자는 “해지 고객에게 상품을 제공한다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알지 못해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박요진 기자 tru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