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이혜진] 푸른 말처럼, 起運生動!

입력 2014-01-03 01:47


끝과 시작이 공존하는 한 주, 끝은 더 애틋하고 시작은 더 설렌다. 작심삼일일지언정 푸릇한 새해 계획을 품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기도 한다. 신년 계획에도 단골이 있다. 그중 운동은 산책 한번 하지 않은 이들도 가장 먼저 적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운동은 계획이 아닌 매일의 밥과 물 같은 것이다. 목적이 필요 없는 것이라야 한다.

IMF사태가 덮친 해 졸업반이 되었다. 소설가를 꿈꾸며 대학에 왔고, 그 명분 하에 열심히 학교생활을 했다. 단 한 가지만 빼고. 취업 준비였다. 하지만 막상 4학년이 되어 몇 가지 정해두었던 길을 거두고 보니 정말 참담했다. 꼬리를 무는 불안과 걱정이 시작되었고, 온갖 망념들로 불면의 밤을 보냈다. 귓가에 매미소리가 들려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보다 못한 선배가 모든 공부와 고민을 일단 접고 운동장을 스무 바퀴씩 뛰라고 조언해 주었다. 아주 천천히 가슴에 손을 대고 나의 심장 박동을 느끼며 뛰는 게 핵심이라고 했다.

달리 해결책이 없었기에 그날부터 운동장을 열심히 뛰었다. 7월 장맛비를 맞고, 태양빛에 그을리며 꽤 너른 운동장을 뛰었다. 한 달쯤 지나자 불면이 사라지고, 눈빛이 돌아왔다. 여전히 선배가 왜 그런 지령을 내렸는가는 이해할 수 없었다.

2학기 어느 날, 고전을 담당하시는 한 교수님이 칠판에 운동(運動)이란 단어를 크게 쓰셨다. 졸업을 두어 달 남겨둔 채 잔뜩 어깨가 움츠러들어 있던 우리들이 안타까우셨던 모양이다.

“운동은 자신의 기운을 움직이고 바꾸는 일이다. 어떤 운동이라도 매일 하는 사람은 스스로 뭐라도 할 수 있는 씨앗을 가진 사람이다. 내일이 보이지 않을 땐 그냥 걸어라.”

나는 지금까지 이 말처럼 ‘운동’ 아니 ‘움직임’의 정의를 절실하게 표현한 말은 못 들어봤다. 운동은 세포와 근육과 맥박이 나는 지금 이렇게 펄펄 살아 있다고, 고향 같은 몸이 여전히 건재하다고 나에게 전하는 외침이다. 그만큼 절실한 살아 있음의 증거이며 희망이다.

그러니 되레 부담으로 인해 몸으로부터의 절절한 외침을 외면하게 만드는 너무 많은 목적과 이유일랑 내려두자. 살이 좀 덜 빠지고 라인이 좀 덜 잡혀도 말이다. 무엇이든 움직이면 되는 것이다.

올 한 해 몸과 마음을 움직이고 닦으며 펄펄 살아 있고 싶다. 푸른 말처럼!

이혜진(해냄출판사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