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염성덕] 공무원 정치적 중립 元年을 기대하며
입력 2014-01-03 01:55
“정치중립 의무를 위반한 공무원이 챙긴 실익보다 손실이 훨씬 크도록 처벌해야”
우리 현대사에서 공무원이 정치적 중립 의무를 지키지 않은 사례는 수없이 많다. 정치적 중립은 고사하고 적극적으로 부정선거를 자행한 경우도 허다했다. 4·19혁명과 이승만 정권의 붕괴를 야기한 3·15부정선거, 1992년 이지문 중위가 폭로한 ‘군 부재자 부정선거’가 대표적이다.
군사독재시절에는 관권선거, 부정선거 의혹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불거졌다. 1980년대에는 보안사령부(현 기무사령부) 예하 부대에서 군 장병들의 부재자 투표지를 뜯어보고 여당에 유리하도록 투표지를 바꾸는 범죄도 서슴지 않았다.
그때보다는 부정선거 수위가 확실히 낮아졌다. 조직적인 관권선거나 부정선거가 눈에 띄게 줄었다. 하지만 민주국가 대열에 합류했다고 자부하는 나라의 체면을 구긴 사건이 지난 대선에서 벌어지고 말았다. 공무원과 군인의 대선 운동 개입이 지난해 정국을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은 것이다. 국가정보원과 국방부 직할 사이버사령부가 조직적으로 댓글이나 트위터를 통해 여당 후보를 지지하고, 야당 후보를 비방하는 범죄행위를 저질렀다.
헌법 등은 군인과 공무원에게 엄정한 정치적 중립을 요구한다. ‘국군은 국가의 안전보장과 국토방위의 신성한 의무를 수행함을 사명으로 하며, 그 정치적 중립성은 준수된다’(헌법 5조 2항), ‘공무원의 신분과 정치적 중립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보장된다’(〃 7조 2항)고 규정한다.
또 ‘공무원은 정당이나 그 밖의 정치단체의 결성에 관여하거나 이에 가입할 수 없다’(국가공무원법 65조 1항), ‘공무원은 선거에서 특정 정당 또는 특정인을 지지 또는 반대하기 위한 다음의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65조 2항)면서 금지행위를 구체적으로 명시했다. 국가정보원법 9조도 직원의 정치관여를 금지한다.
헌법 등에 군인과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을 명시한 이유는 단순하고 명쾌하다. 어느 정파가 집권하더라도 신분을 보장할 테니 공평무사하게 국민에게 봉사하라는 뜻이다. 이는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헌법 1조 2항)는 내용을 일점일획도 가감하지 말고 받아들이라는 지상명령이나 다름없다. 5년 단임 정권은 유한하지만 국민은 영원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지난해 ‘정국을 들었다 놨다’ 하는 우여곡절 끝에 국정원 개혁과 관련한 7개 법안이 1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것은 늦었지만 다행스런 일이다. 개정된 국정원법은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국정원 직원의 정치활동 관여를 금지하고 위반한 직원에 대한 처벌 수위를 크게 강화했다.
본회의를 통과한 국가공무원법 지방공무원법 경찰공무원법 군형법도 해당 부처나 기관의 직원이 정치개입을 할 경우 처벌 수위를 높이고 직군에 따라 제각각인 정치관여죄의 공소시효도 대폭 연장해 10년으로 단일화했다. 의미 있는 개정이라고 할 만하다.
하지만 국정원 정보관(IO)을 통한 정보수집과 사이버심리전 기능이 남아 있어 국정원의 정치개입 가능성은 열려 있다. 군인과 공무원이 선거운동에 뛰어든 것은 법령의 미비 때문이라기보다는 조직 운영을 잘못한 측면이 강하다. 따라서 공무원이 정치적 중립 의무를 위반하고 챙기는 실익보다 잃게 될 손실을 훨씬 크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개정된 7개 법률을 시행하면서 처벌 수위를 더욱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공무원의 선거개입 못지않게 근절시켜야 할 범죄가 공무원의 정치활동이다. 대법원이 지지난해 시국선언을 통해 정부를 비판한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교사들에게 유죄를 선고한 데 이어 지난해 12월 시국선언을 지지하며 범국민대회를 강행한 손영태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전 위원장 등에게 유죄 판결을 확정했다. 공무원의 정치활동 금지 대상을 폭넓게 인정한 것이다.
공무원은 헌법과 국가공무원법 등에서 규정한 정치적 중립의 정신을 훼손하면 안 된다. 지방선거가 있는 올해를 공무원 정치적 중립의 원년(元年)으로 만드는데 지혜를 모으자.
염성덕 논설위원 sdyu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