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이명희] 리더의 스킨십
입력 2014-01-03 01:54
2008년 미국 연수시절 버락 오바마와 존 매케인이 맞붙은 미국 대선전을 느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오바마 당시 민주당 대선후보의 매력에 반한 것은 그가 시골의 대학 농구장까지 찾아와 한 힘 있는 연설보다 딸의 축구장을 찾은 TV 속 평범한 ‘사커 대디’의 모습 때문이었다.
바쁜 선거일정을 뒤로 한 채 노을이 지는 저녁 무렵, 부인 미셸과 함께 큰딸이 경기하는 시카고의 동네 축구장을 찾은 오바마는 접이식 의자에 걸터앉아 딸을 응원했다. 가끔씩 어깨를 툭 치며 인사를 건네는 지인들과 악수를 하고, 경기 도중 꾸벅꾸벅 졸기도 하는 모습이 미국의 평범한 부모들과 다를 바 없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 후에도 축구장을 찾아 딸의 축구경기를 관람하거나 점심 때 햄버거 가게에서 줄을 서서 햄버거를 사기도 했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 최고사령관으로 있을 때였다. 참모와 부관을 데리고 계단을 내려가는데 한 병사가 담배를 물고 계단을 올라오면서 “헤이, 라이터 좀 주게”라고 했다. 아이젠하워는 얼굴을 찡그리는 참모를 뒤로 한 채 두말없이 담배에 불을 붙여주었다. 병사가 사라진 뒤 그는 “위에서 내려가는 나는 병사의 계급장이 보이지만 아래서 올라오는 병사는 내 계급장이 안 보인다”며 태연히 계단을 내려갔다. 그가 대통령이 된 뒤 한 행사에서 연설을 하고 내려오다가 넘어지자 사람들이 웃었다. 그는 툭툭 털고 일어나며 “여러분들이 즐거우시다면 한 번 더 넘어질 수도 있습니다”라고 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며칠 전 베이징 시내 만두가게에서 줄을 서서 만두를 산 데 이어 신년사를 발표하면서 집무실을 최초로 공개했다. 집무실에는 만리장성 그림, 오성홍기와 함께 어머니의 손을 잡고 산책하는 사진 등이 있었다. 억만장자 마이클 블룸버그는 12년간 몸담았던 뉴욕시장 자리를 물러나면서 지하철을 타고 퇴근했다.
리더나 거부(巨富)들의 소탈한 행보는 감동을 준다. 그들도 우리와 같은 ‘사람 냄새’를 풍기고 ‘구중궁궐’이 아닌 팍팍한 이 땅을 디디고 살아간다는 공감대 때문이리라.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피터 드러커는 “리더는 히틀러와 같이 카리스마 있는 사람이 아니다. 아이젠하워와 같이 온화하고 신뢰감을 주는 사람이다”라고 했다. 요즘 소탈한 면모의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영화가 흥행하고 있는 것도 외롭고 고단한 어깨를 따뜻하게 감싸줄 리더가 그리워서일 거다.
이명희 논설위원 mh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