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임만호 (8) 김준곤 목사 “민족 복음화 위해 CCC 참여하라”
입력 2014-01-03 01:29
1968년 10월 5일 미림목재 입사시험에 합격하고 10일부터 출근했다. 사장님과 전무님은 입사 환영과 훈시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회사에 금송아지가 있어도 팔 줄을 모르면 돌덩이만도 못한 것이다. 여러분이 각별히 신경 쓸 게 있다. 첫째는 영업을 잘해야 하며, 둘째는 목재를 잘 알고 구입을 잘 해야 한다. 셋째는 부하 직원들을 잘 관리할 줄 알아야 한다. 앞으로 2개월간 사무실에 들어올 생각 말고 공사현장에서 현장 일을 배우도록.”
당일 목재 공장에서 작업복을 지급받았다. 2개월간 일과 시간에는 공장장의 지시에 따라 목재 운반과 톱으로 목재를 켜는 일을 했다. 톱밥을 모으고 피죽 묶어 옮겨 쌓고 목재 입출고 등을 점검하며 현장 직원들과 함께했다.
신입사원 5명은 일과가 끝나면 오후 6시 사무실로 들어가 전무님으로부터 영업과 사무 행정에 대해 1시간씩 교육받았다. 그때 계산서를 작성하며 검산을 주산으로 했다. 2개월간 현장실습 후 영업실습을 6개월간 한다고 했다. 목재가 필요한 건축현장과 목재소 매점으로 아침 7시까지 출근했다. 그와 동시에 전날 영업활동 보고를 하고 9시부터 현장 판매사원으로 일했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일은 서울 신림극장 건축현장에 목재를 납품한 것이었다. 당시 신림극장 건축현장에 납품한 목재 가격만 해도 3억원이 넘었다. 신입사원으로서 대어를 낚았다고 사내에 칭찬이 대단했다. 영업실습 6개월 동안 입사동기 중 3명이 중도 퇴사해 버릴 정도로 고된 일이었다.
70년 6월 서울 대림동 영업소장으로 발령을 받고 불철주야 회사를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을 때였다. 지금은 남서울은혜교회 원로목사님인 홍정길 목사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홍 목사님은 당시 한국대학생선교회(CCC) 총무간사로 한국CCC 설립자이신 김준곤 목사님과 함께 대학생 복음화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다. 홍 목사님은 학원복음화와 민족복음화의 비전을 간단하게 전화로 설명한 뒤 며칠 후에 김 목사님과 면담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신설 영업소지만 다른 영업소를 따라갈 만한 실적을 보이고 있어 재미있게 일을 하고 있을 때였다.
홍 목사님은 조선호텔 커피숍에서 김 목사님과의 면담을 주선하고 떠났다. 김 목사님은 홍 간사에게서 나를 자세히 소개받으셨다는 말씀을 하셨다. 목사님 역시 CCC의 거룩한 비전을 설명하면서 CCC가 당면한 사업 중 회관 건축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법인을 설립했다고 말했다.
“CCC가 지금 중대한 기로에 놓여 있습니다. 자체 회관도 지어야 하고 민족복음화를 위해 전력을 다해 뛰어가야 할 상황입니다. 임 선생은 제가 생각해도 하나님께서 학원복음화와 민족복음화를 위해 예비해 놓은 인재인 것 같습니다. CCC에서 재정담당을 해주십시오.” 간사 봉급은 월 5만원이었다. 당시 총무였던 홍 목사님의 급료보다 1만원 정도 높았으나 미림목재소보다는 1만원 적었다. 하지만 김 목사님이 보여주신 민족복음화와 세계선교의 꿈이 나를 움직였다. 그렇게 그 꿈에 사로잡혀 CCC에 합류했다.
목재사 일은 건축과 밀접한 관계를 가졌던 만큼 CCC 회관을 건축하는 데 도움이 됐다. 대학에서 전공했던 경영학은 CCC 재정을 담당하는 데 요긴하게 쓰였다. 이때의 건축 경험으로 훗날 반포 남서울교회 건축실행위원장으로 일했고 1993년 남서울은혜교회가 밀알학교를 건축할 때도 위원장과 실행이사로서 헌신했다. 이처럼 하나님께 드려지는 건축은 시간이 지나서야 그 뜻을 알게 됐다.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