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경영 ‘멘토’는 하나님이었다
지난달 31일 서울 고척동 동구바이오제약 본사에서 만난 이경옥(75) 회장의 첫인상은 영락없는 우리네 어머니의 모습이었다. 푸근한 인상과 부드러운 말투, 수수한 차림은 평소 차분하고 소탈한 이 회장의 성격을 그대로 보여준다. 하지만 남편의 죽음과 신앙, 사장 취임 이후 회사 경영을 말할 땐 주먹을 꽉 쥔 채 강한 어조로 자신의 뜻을 전했다. 50대 주부에서 제약회사 여성 CEO를 거쳐 비영리단체 ‘아시아포커스’의 이사장까지. 남편과의 사별 이후 이 회장은 끊임없이 스스로를 혁신했다. 그는 “무덤에 같이 들어가고 싶을 정도로 힘겨웠지만 역설적이게도 하나님은 이를 계기로 여성 CEO로 성장케 하셨다”고 담담히 고백했다.
위대해지는 걸 두려워 말라
경영 일선에 나서기 전 이 회장은 전형적인 주부였다. 남편 고(故) 조동섭 전 회장 내조와 자녀 양육, 살림에 힘써온 그는 밖에서 목소리를 낼 기회가 거의 없었다.
그랬던 이 회장에게 5년간 투병했던 남편의 죽음은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그는 ‘원인 모를 병에 걸린 남편 대신 잠시 자리를 지키자’는 생각으로 1992년 부사장으로 회사 경영에 참여했다. 치료를 위해 백방으로 뛰었지만 남편은 병석에서 일어서지 못했다.
“남편의 완쾌를 위해 기도했지만 하나님의 뜻은 저와 달랐습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모든 게 제 탓 같더군요. 며칠간 두문불출했습니다. ‘과부가 어떻게 당당히 고개를 들까’란 생각에서요.”
하지만 슬픔에만 잠겨 있을 순 없었다. 97년 2월, 이 회장은 59세의 나이로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나약하게 지내기보단 하나님께 회사 경영을 위해 지혜를 구하는 게 신앙인의 자세라 믿어서다.
회사 경영에 뛰어들자마자 이 회장이 맨 처음 한 일은 ‘전 부서 브리핑’. 비전문가인 그가 제약회사의 생리를 단번에 이해하긴 쉽지 않았다. 매일 관리·영업·물류·제조 부서의 보고를 받고 각종 회의에 참석하며 회사의 업무를 파악했다. 그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퇴근 후 중앙대 사회개발대학원과 이화여대 경영대학원, 전국경제인연합회 최고경영자과정에 등록해 경영학을 공부했다.
바쁜 와중에도 이 회장은 한국기독정경인회 성경공부모임에 열심히 참여했다. ‘모든 경영원리는 성경 안에 있다’는 믿음에서다. 업계에서 비전문가·여성으로 위축될 때, 중요한 결정을 할 때마다 그는 성경에서 배운 원리를 기억하며 수시로 기도했다.
“성경공부모임에서 한 목사님이 항상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위대해지는 걸 두려워 말라’고요. 연약하고 부족한 제 뒤에 하나님이 계신다는 생각은 제게 큰 힘이 됐습니다. 모든 걸 아시는 주님이 경영하면 그저 전 청지기 역할을 잘하면 되니까요.”
마음경영으로 기업문화를 바꾸다
외환위기 시절 대표이사가 된 그는 ‘선택과 집중’ 전략을 택했다. 대기업과 경쟁하기 위해선 이것만이 살길이라 판단해서다. 피부·비뇨기과 제품에 집중하자 점차 매출이 상승세를 탔다. 92년 200억원대의 매출을 올리던 동구바이오제약은 지난해 연간 730억 매출액을 기록했다. 처방전 기준으로 피부과 1위를 달성하는 기염도 토했다. 그는 이러한 성과를 낼 수 있었던 비결로 ‘마음경영’을 꼽았다. 직원이 마음껏 일할 수 있게끔 환경을 조성하고 마음을 하나로 묶는 게 CEO의 중요한 역할이라 봐서다. 그는 직원 경조사에 직접 편지를 쓰고 격주마다 생일을 맞은 이들에게 꽃과 케이크를 선물한다.
그는 기업문화뿐 아니라 회사의 사회공헌에도 영향을 미쳤다. 제약회사로서 의료봉사에 기여하는 것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 본 그는 ‘아시아포커스’ 재단 이사장으로 취임해 인도와 방글라데시에 학교와 병원을 세우는 일에 힘을 보탰다. 최근엔 케냐 가리사 지역에 병원과 학교를 세웠다.
술 접대가 당연시되는 제약업계지만 이 회장은 와인 한 잔도 못 마신다. 영업을 하진 않지만 ‘여성 CEO라 술을 못 한다’는 시선은 견디기 어려웠다고 했다. 하지만 억지로 술잔을 들지 않았다. 약점을 인정하되 여성 특유의 장점인 부드러움, 섬세함을 강조한 경영을 펼치는 데 더 주력했다.
그는 후배 크리스천 여성 CEO에게 술 문제로 위축되지 말라고 충고했다. 남성을 압도하거나 똑같이 하려고 애면글면하기보다 여성성을 강점으로 살리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경옥 대표=△1939년 출생 △94년 대한약품공업협동조합 이사 △97년 동구제약 대표이사 △2003년 한국여성경제인연합회 회원 △2004년 100만달러 수출탑 수상 △2005년 동구제약 회장 취임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
[기독여성CEO 열전] ① 동구바이오제약 이경옥 대표
입력 2014-01-03 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