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들이 안 움직인다… 靑 강한 드라이브, 공직사회 수동적 업무시스템 굳어져
입력 2014-01-02 02:28
지난 연말 22일 동안 계속된 철도노조 파업 사태 당시 관련 부처 장관을 비롯해 정부 인사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노조 측을 제외하면 최연혜 코레일 사장과 새누리당 김무성, 민주당 박기춘 의원만 눈에 띄었다.
특히 최 사장은 파업 초기부터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는 모습이었다. 노조 간부가 피신해 있던 조계사를 방문해 박태만 철도노조 부위원장과 면담하는 등 꾸준히 대화를 시도했다. 협상이 결렬된 뒤에는 노조원들에게 업무 복귀를 지시하는 ‘최후통첩’을 전하는 등 강온 양면으로 두둑한 배짱을 보여주며 뛰어다녔다.
하지만 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의 태도는 사뭇 달랐다. 파업 19일째였던 지난달 27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중재로 노·사·정이 한 자리에 모였다. 서 장관은 이때 철도노조를 처음 대면한 것으로 확인됐다. 서 장관은 “(그동안) 노조 위원장을 만날 환경이 아니었다”고 말해 여야를 불문하고 의원들의 빈축을 샀다. 이틀 뒤 서 장관은 “불법파업 중에 노조를 직접 만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거듭 강조했다.
소극적인 장관들의 모습을 두고 여론에 민감한 정치권에선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박근혜 대통령을 대신해 정책을 집행하고, 정부 입장을 적극적으로 알려야 할 장관들이 현장을 지나치게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정작 현장에 뛰어들었을 때는 만족스러운 능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새누리당 한 의원은 1일 “여당 입장에서는 국회에 출석해 답변하는 장관들에게 ‘왜 이렇게 자신감이 없느냐’며 질타까지 하지만 문제가 개선될 수 없는 구조적인 한계를 느낀다”고 말했다.
청와대 내부에서는 정부에 대해 답답해하는 기류가 역력하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을 보좌하는 그룹인 청와대와 정책을 집행하는 정부 사이 현실적인 인식 차이가 크다”고 밝혔다. 특히 지난 대선에서 승리하고 정권을 재창출하기 위해 일찌감치 공약을 준비했던 인사들은 더 불만이 많다. 창조경제 등 중요한 국정과제에 대해 청와대가 “대선 전부터 준비됐고, 정부가 출범한 지 10개월이 지났는데 이제 본격적으로 성과가 나와야 되는 것 아니냐”는 입장을 보이면 정부 공무원들은 “이제 10개월 밖에 안 지나지 않았느냐. 추진하는 과정”이라고 반박한다고 한다.
장관들이 전문가·공무원 출신 위주로 구성돼 정부의 정무적 능력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담당 분야에 대해 이론적 전문성은 뛰어나지만 현장 대응능력이 떨어지고 여론에 둔감하다는 것이다. 또 국회를 상대해본 경험이 적어 정책 입법화를 능숙하게 주도하지 못하는 것도 취약점으로 꼽힌다. 정홍원 국무총리가 연말 예산안·입법 정국에 “장관들이 국회에 상주하라”고 지시해야 할 정도다.
대통령이나 청와대가 장관들에게 확실한 책임과 함께 권한을 줘야 하는데 너무 일방적으로 국정을 끌고 가면서 공무원사회에 수동적인 업무 시스템이 굳어지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박 대통령은 정부 출범 초반부터 국정철학을 공유하려는 차원에서 장관들을 다그쳤지만 이 때문에 대통령의 지시가 나와야 장관들이 움직이고, 먼저 움직이지 않는 장관들에게 대통령이 답답해하는 악순환이 고착됐다는 우려다.
일각에서는 현 정권이 집권 이후 공직사회를 대대적으로 개편하지 않아 정부가 느릿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공무원들을 ‘물갈이’한 뒤 청와대가 집권 초반부터 주도권을 쥐고 국정운영을 이끌어갔던 역대 정권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다만 이에 대해 한 청와대 관계자는 “과거 정부에서는 공무원들이 집권 1∼2년차에만 ‘반짝’ 일하고 이후 정권의 힘이 빠지면 차기 권력에 눈을 돌리던 부작용이 있었다”며 “지금은 답답해 보이겠지만 공무원들이 집권 내내 우직하게 일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성열 기자 nukuv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