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성장시대, 패러다임을 바꾸자] 저성장 시대 왔는데… ‘과거’에 젖어있는 한국

입력 2014-01-02 01:43

1987년 대선 당시 노태우 후보는 임기 내 연평균 7% 경제 성장을 공약했다. 세계경제 호황에 힘입어 88년부터 5년간 연평균 성장률은 8.36%를 기록, 공약은 초과 달성됐다. 20년 후 2007년 대선에서도 7% 경제 성장을 약속한 이명박 후보가 당선됐다. 하지만 임기 내 연평균 성장률은 2.9%에 그쳤다. 한국의 잠재성장률도 90년대 연평균 7%대에서 최근에는 3%대 후반으로 주저앉았다. 박근혜정부 2년차인 2014년. 이제 누구도 7%대 성장을 얘기하지 않는다. 대중적 인기를 의식해 그동안 애써 외면해 왔던 정치권에서조차 저성장 담론이 시작됐다.

문제는 1960년대 후반 이후 40년 이상 진행된 고도성장에 우리 국민의 라이프스타일은 물론 사고방식까지 이미 굳어진 상태라는 점이다. 이창용 아시아개발은행(ADB)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한국은 4% 이하의 저성장 시대로 와 버렸는데 사회 시스템은 여전히 고성장 시대 때 그대로”라고 지적했다.

고성장 시대의 패러다임이 바뀌지 않는 한 가계, 기업, 정부 등 경제주체들의 고통은 커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잇따른다. 권혁세 전 금융감독원장은 “2%대에 머물고 있는 실질성장률, 생산 가능인구 감소,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커진 가계 부채, 내수 부진과 경쟁력 약화로 부도 위기에 몰린 자영업자와 중소기업 등으로 우리 경제는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고의 자살률과 최저 수준의 출산율도 우리 사회가 저성장 시대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단면을 보여주는 지표라는 해석도 있다.

이제 고성장을 막연히 기대하는 것보다 저성장을 뉴 노멀(New Normal·새로운 경제질서)로 받아들이고 사회 시스템과 경제주체들의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전문가들은 정부에 효율성을 주문한다. 고성장 개발연대 시절 화끈한 인프라 투자 등을 통한 경기부양의 추억은 잊고 저성장 시대에 맞는 세원확보 방안이나 복지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배현기 하나금융경영연구소장은 1일 “저성장기에는 분배 욕구는 더 커지는 반면 쓸 돈은 줄어들면서 갈등 요인이 훨씬 늘어난다”며 “한정된 재원을 가지고 커진 갈등 구조를 효율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정부 예산의 적자 구조와 지출 구조를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장희 기자 jh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