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서울남부교도소 출소자들의 새해 맞이… 그들은 고개를 떨궜고 부모는 감싸안았다
입력 2014-01-02 01:37
“두부 사오셨냐”는 질문에 “그런 건 미신”이라던 A씨(67)가 점차 초조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아들(37)의 출소 시간이 다가오자 “혹시 주변에 두부 파는 곳 있느냐”고 묻더니 “아버지란 사람이 정신이 없어서 아들 데려갈 준비도 제대로 못했다”고 자책했다. 그는 “이거라도 줘야겠다”며 주머니 속 홍삼 캔디를 꺼내 만지작거렸다. 지난 31일 오후 11시40분쯤 서울 금오로 서울남부교도소 대기실. 주로 초범들이 수감되는 이곳에서 1일 0시가 되면 출소할 재소자는 5명이었다.
벌금을 못내 노역장에 유치된 3명과 수개월 징역형을 받은 2명. 과거엔 형기가 만료돼도 관행적으로 하룻밤 더 자고 아침에 나왔으나 요즘은 자정이 지나면 바로 출소한다. 두 아버지가 교도소에서 나오는 자식을 마중 나와 있었다.
양복에 구두를 신은 A씨. 일주일에 한 번씩은 꼭 연락하던 아들이 지난여름 갑자기 전화를 받지 않았다. 한 달 뒤 법원에서 아들의 구속을 알리는 통지가 왔다. 불법 도박장을 차린 혐의로 5개월 징역형이 선고돼 입감됐다는 거였다. A씨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밥은 먹는지, 잠은 자는지 걱정으로 살았다”고 했다. 그는 아들에 대해 “나쁜 친구 만난 못난 놈”이라면서도 “그래도 자식인데 와봐야지. (교도소에서) 나왔는데 아무도 없으면 얼마나 실망하겠어”라고 말했다.
A씨는 2002년 사업이 부도난 뒤 위암과 대장암, 폐암 수술까지 받았다. 보험설계사로 일하고 있지만 실적이 좋지는 않다. 복잡한 보험 상품 외우는 게 고역이다. 아내도 몸이 좋지 않아 시골에서 따로 살고 있다. 외롭고 힘들 법한데도 그는 “아플 새가 없다”고 했다. 아들 걱정 때문이란다. ‘미련할 정도로 착한’ 아들이 또 어떤 유혹에 넘어갈지 걱정이 태산이라고 했다.
옆에는 B씨(50) 부부가 서 있었다. B씨는 오른손에 아들에게 입힐 검은색 반코트, 왼손에 두꺼운 스웨터가 담긴 쇼핑백을 들었다. “추운데 어떻게 지내는지, 두꺼운 옷도 없을 텐데….” 옆에서 듣던 A씨가 “날이 추워져서 이틀 전에 (아들) 외투를 교도소에 넣어줬다”고 하자 B씨는 “그런 게 있는 줄 몰랐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초조한 듯 주위를 오가던 B씨 아내는 순찰 중인 교도관을 아들로 착각해 뛰어나가기도 했다.
B씨 아들(27)은 4개월 전 병역법 위반으로 이곳에 왔다. 공익근무요원 복무 중 여러 차례 무단결근한 죄다. B씨에게 아들의 생김새를 묻자 “키도 크고 잘생겼다. 항상 엄마 아빠 생각하는 효자”라고 했다. 5분마다 대기실의 교도소 쪽 창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던 B씨는 “잘못했으니 책임지는 게 당연하지만 아들이 너무 보고 싶다”고 말했다.
‘펑∼펑.’ 갑자기 멀리서 폭죽소리가 들려왔다. 자정이 되면서 새해를 알리는 행사가 시작된 것이다. “새해네 새해….” A씨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B씨는 “(자식이 교도소에 입감된 게) 좋은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가 함께 새해를 맞았네요”라고 했다.
A씨는 아들이 출소하면 바로 찜질방에 데려가겠다고 말했다. 아들이 성인이 된 뒤로는 같이 목욕탕에 간 적이 없었다. 그는 “새해를 맞아 깨끗이 씻고 새로 시작하자는 의미”라고 했다. 새해에는 아들이 결혼도 하고 번듯한 직장도 잡아 잘사는 게 그의 바람이다.
B씨는 아들이 좋아하는 고기를 잔뜩 먹이고 싶다고 했다. 밤이라 문 연 식당이 있겠느냐고 하자 “문 연 곳 찾아서 어디든 가야지. 그래도 아들인데, 이번은 실수라고 믿는다. 새해를 맞아 함께 새롭게 시작하면 된다”며 웃었다.
0시20분 무전을 받은 봉인하(48) 교도관이 A씨와 B씨에게 “나옵니다”라고 했다. B씨 아내는 “나온다, 나온다” 하며 제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저 멀리 아들이 보이자 B씨는 “아빠다! 아빠야!” 소리치며 손을 흔들었다. 교도소 입구에서 검문소까지 약 100m를 걸어오는 2분여 동안 부모들은 설레는 표정으로 아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줬다.
B씨 아들은 기다리던 아버지의 눈길을 애써 피하며 머쓱하게 웃었다. “춥지?” B씨는 아들을 품에 안으며 다정하게 물었다. 잠시 후 아버지가 미리 넣어준 두꺼운 외투를 입은 A씨 아들이 검문소를 나왔다. 아버지를 발견한 그는 고개를 떨궜다. 부자(父子)는 서로 손을 꼭 잡은 채 한참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물끄러미 아들의 얼굴을 바라보던 아버지는 아들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야 아들의 허리를 감싸 안고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새로운 출발을 위해, 아버지와 아들은 꼭 잡은 손을 놓지 않은 채 어둠을 뚫고 사라졌다. 봉 교도관은 “출소자들이 새해를 맞아 멋진 인생 2막을 개척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마중 나온 사람 없이 쓸쓸히 출소해 새해를 맞은 이들도 있었다. 같은 시각 경기도 의왕 판교로 서울구치소 앞 주차장에는 택시 한 대만 덩그러니 서 있었다. 기사에게 “어떻게 왔느냐”고 물으니 “매일 밤 0시30분이면 여기서 나오는 사람들을 태우러 온다”고 했다. 이곳은 서울남부교도소에 비해 무거운 죄를 저지른 이들이 수감된다. 정적을 깨는 쇳소리와 함께 구치소 정문이 열리며 재소자 5명이 정문을 나섰다. 이들을 반기는 건 택시기사뿐이다. 기사가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지만 그들은 대꾸도 없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뿔뿔이 흩어졌다.
박세환 조성은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