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의 동북아] “북·중·일, 상대국 개의치 않고 맘대로 행동해 걱정”

입력 2014-01-02 01:29


美 브루킹스연구소 폴락 중국센터 소장

미국의 동아시아·중국 전문가인 조너선 폴락 박사는 “동북아시아의 ‘게임의 법칙(rule of game)’이 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 브루킹스연구소의 존 L 손튼 중국센터 소장인 폴락 박사는 지난 20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북한 중국 일본 등 4개국이 국내 정치적 요인에만 몰두하면서 상대국이나 지역 전체에 미치는 영향, 함의를 상관하지 않고 행동하고 있다”며 이렇게 진단했다.

그는 북한 김정은 체제의 불확실성 증대와 미국·중국의 경쟁, 일본과 중국 간 영토분쟁 가열 등으로 향후 2∼3년 이 지역의 불확실성이 크게 높아질 것으로 우려했다.

이에 따라 정부 차원뿐 아니라 민간에서도 역내의 다자 협력을 증진할 수 있는 협의체 구성 등의 노력이 긴요하다고 조언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최근 동북아의 정세 불안이 걱정된다. 상대적으로 평온했던 곳이 왜 몇 년 사이에 이처럼 첨예한 갈등 지역으로 변했는가.

“역내 4개 주요 행위자인 남북한, 일본, 중국의 정치 지도자들이 거의 한결같이 국내 문제를 앞세워 역내 전체나 관련 상대국에 미칠 영향이나 결과를 고려하지 않고 행동하고 있다. 북한이 장성택 숙청으로 몇 주 전에 비해 더욱 자기폐쇄적인 상태가 됐다. 다른 나라의 지도자들도 새해 들어 또 자국민들의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는 정치 의제를 제기할 것이다. 역내 다른 국가의 반응은 개의치 않고 말이다. 걱정스러운 상황이다.”

-동북아 국가들이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는 뭔가.

“각국에 전보다 더 강력한 지도자들이 등장한 것과 관련이 있다.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는 국민들의 지지를 얻어내는 쉬운 방법으로 민족주의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있다. 둘째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존 케리 미 국무장관 등이 거듭 미국은 아시아에서 물러서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천명하고 있지만 역내 국가들이 이를 100% 신뢰하지 않는 것과 관련이 있다. 이는 미국의 능력이 이제 동북아 국가들에 확신을 심어줄 정도가 못 된다는 얘기도 된다. 이와 관련, 오바마 행정부의 소위 ‘아시아 중시정책’에서 말하는 아시아는 동북아가 아니라 동남아시아라고 본다. 마지막으로 예상보다 훨씬 빠른 경제 발전을 바탕으로 한 중국 국력 신장도 동북아 외교·안보 지형 변화의 주요 요인이다.”

-미국이 중국의 방공식별구역(ADIZ)을 인정하지 않겠다면서도 조 바이든 미 부통령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시 주석에게 강력히 경고하지 못했다는 불만이 일본에서 나왔다. 미국의 대(對)중국 정책의 기본 원칙은 뭔가.

“오바마 행정부 1기 때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을 역임한 제프리 베이더 박사는 미국의 대중국 전략을 세 가지로 요약한 바 있다. 그는 소위 ‘아시아로의 외교축 전환(Pivot to Asia)’ 혹은 ‘재균형(Rebalancing)’으로 불리는 아시아 중시 정책을 입안했다. 첫째는 중국의 부상과 확대되는 역할을 환영한다. 둘째는 중국의 부상이 국제 규범, 국제법과 일치해야 한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중국의 부상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불안정하게 하지 않도록 역내 환경을 조성하는 노력을 경주한다는 것이다. 미국은 중국의 부상을 반대하지 않고 국제사회에 도움이 되도록 유도하는 한편 위기감을 갖는 역내 우방을 지원하고 안심시켜야 한다. 기본적으로 딜레마다.”

-2014년 동북아를 어떻게 전망하나.

“중국의 ‘규칙 제정자’로서의 힘이 강해지고 동북아 역내 국가 지도자들이 국내 이슈에 집중, 협력을 회피함으로써 동북아의 ‘게임의 법칙’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앞으로 수년간 유심히 살펴봐야 할 포인트는 미국과 중국이 북한 문제를 포함, 동북아 역내 문제와 관련해 ‘의미 있는’ 협력과 대화를 증진할 방안을 마련할지 여부다. 동북아 역내 이슈 등 세계 질서에서 중국의 의견을 제외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워진 게 현실이다.”

-동북아의 긴장을 줄이기 위해 미국은 어떻게 해야 하나.

“미국이 세계의 모든 문제에 해법을 갖고 있지 않고, 해결할 수도 없다. 동북아 역내 국가들의 노력이 중요하다. 앞에서도 지적했지만 정치 지도자들이 대중에 영합해 민족주의에 기반을 둔 외교정책에 치우치는 것을 제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동안 동북아 국가들은 한국과 미국, 일본과 미국, 한국과 일본 관계 등 전통적인 양자외교에만 익숙해 있다. 이제는 다자협력을 증진시키는 좀 더 포괄적인 구조가 동북아에 필요하다. 정부 차원이 당장 힘들다면 민간과 정부 당국자가 공동으로 참석하는 1.5트랙의 협의체, 비정부기구(NGO) 간 조직을 설립할 수 있다.”

-장성택 처형이 미·중 관계에도 영향을 미칠까.

“일단 중국이 김정은의 장성택 제거에 매우 화가 났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이에 따라 중국이 비핵화를 위한 대북 압박에 더욱 적극적으로 동참할 가능성이 있다. 그럼에도 중국이 북한에 의미 있는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전제는 비관적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나 현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의 최대 목표 중 하나가 중국이 북한 국내 정치에서 주요한 역할을 하는 것을 막는 것이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워싱턴=글·사진 배병우 특파원 bwb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