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의 동북아] 우경화·CADIZ 선포… 日·中의 ‘마이 웨이’
입력 2014-01-02 01:42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추진과 전범 참배 강행, 중국의 동중국해 방공식별구역(CADIZ) 선포…. 2013년 연말을 장식한 일련의 외교·안보 상황만 봐도 2014년 동북아 정세는 상당한 험로를 예고하고 있다. 현재 동북아 정세는 시계(視界) 제로 상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과 중국은 주변국과의 관계를 고려하기보다 ‘마이 웨이’ 행보를 강행하고, 미국은 동북아에서의 영향력을 확고히 하려는 정책을 펴고 있다. 이런 패권 경쟁은 갈등이 불가피한 만큼 여태껏 겪어보지 못한 외교·안보 상황이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브레이크 없는 일본의 우경화=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추진은 동북아 전체 긴장도를 높이는 요소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지난 7월 참의원 선거 승리로 2016년까지 임기가 보장되면서 하반기부터 집단적 자위권 추진 행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특히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위한 헌법 해석 변경을 앞두고 보수층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해 아베 총리는 지난 26일 야스쿠니 신사를 전격 참배했다. 2006년 8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 이후 7년4개월 만이었다.
아베 총리는 참배 직후 한국과 중국 등 주변국의 감정을 상하게 할 의도가 없다고 밝혔지만 진정성을 느끼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그는 지난 4월 1995년 침략과 신민지배를 사죄한 무라야마(村山) 담화에 대해 그대로 계승하지 않겠다며 수정 의사를 밝혔다. 동일본 대지지 피해 현장인 미야기현 히가시마쓰시마의 항공자위대를 방문한 5월에는 2차 세계대전 때의 인간 생체실험 부대를 연상케 하는 ‘731’이 적힌 전투기를 타고 손가락으로 승리를 뜻하는 ‘V’를 표시했다. 히로시마 원자폭격 68주년을 맞은 8월 6일에는 항공모함급 헬기 호위함 이즈모를 공개했다. 이즈모는 독도를 자신의 영토라고 주장하는 일본 시마네현의 옛 이름인 동시에 1937년 8월 중일전쟁 당시 상하이를 포격하는 데 앞장섰던 장갑 순양함의 이름이다.
아베 총리가 이처럼 1년 내내 한국과 중국을 도발하며 극우 행보를 이어간 것은 주변국과의 관계 개선을 뒤로 한 채 자국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 집중하겠다는 의중을 드러낸 것으로 분석된다. 연말에 강행한 신사 참배로 볼 때 이런 기조는 올해 그대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 때문에 한·중·일은 연초부터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추진 등을 놓고 거세게 격돌할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또 다른 갈등 요인인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문제까지 불거질 경우 중국과 일본이 ‘강(强) 대 강(强)’ 충돌로 치달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실제 지난해 11월 중국이 방공식별구역을 선포한 뒤 남중국해에는 중국과 일본의 항공모함과 준항모급 함정이 집결했다. 중국은 군사훈련을 부쩍 늘리고 있고, 일본은 이에 맞서 올해부터 5년간 적용될 중기 방위력정비계획에 전투기 부대 증강, 조기경보기 및 수륙양용부대 신규 편성, 무인정찰기 글로벌호크 도입 등을 포함시켰다.
군사 전문가들은 양국이 군사적 경쟁을 계속할 경우 무인정찰기 격돌과 같은 직접적인 충돌 가능성도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미·중 간 위험한 아시아 패권 승부=G2(주요 2개국)인 미·중 간 패권 경쟁도 동북아 정세에 새로운 위기로 떠오르고 있다.
양국 갈등은 중국이 지난해 11월 CADIZ를 선포하면서 정면충돌 양상으로 변했다. 당시 미국은 CADIZ 선포를 무력화할 목적으로 자국 전략폭격기 2대를 동중국해 상공으로 출격시키며 무력충돌 우려를 낳기도 했다. 동북아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며 안보 질서를 재편하려는 중국과 기존 패권을 유지하려는 미국이 대결 구도로 마주선 것이다. 중국은 CADIZ 무단 진입 시 격추할 수 있다며 구역을 남중국해와 서해로 확대한다는 방침을 밝힌 상태다.
미국과 중국은 그동안 서로 군사력 확장을 경계하며 역내 갈등을 최소화하는 전략을 펴왔다. 양국은 1972년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패권을 갖지 않고 제삼국의 패권 확립에도 반대한다는 내용의 상하이 코뮈니케를 체결했다. 97년에는 바다와 상공에서 군사훈련 시 안전을 최대한 보장키로 하는 군사해양안보협력을 맺었다. 최근 고조된 양국 간 갈등은 이런 기존 약정을 모두 무너뜨리고 본격적인 패권 경쟁에 돌입하는 시발점이 될 수 있다.
지난해 2기를 맞은 오바마 정부는 1기 집권 때 내세운 ‘아시아 중심축(Pivot to Asia)’ 전략을 재천명하며 중국의 패권 확장 견제에 주력하고 있다. 이를 위해 미국은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추진에 맞장구치면서 한국과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 한·미·일 3각 군사협력 체제 구축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중국의 CADIZ 선포는 이런 미·일 협력에 맞불을 놓은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만 일본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한국의 협력에 걸림돌로 작용, 미국의 야심 찬 계획에 차질이 빚어지게 됐다.
중국은 CADIZ 선포가 영유권 문제로 양보할 수 없는 ‘핵심 국가이익’이라며 미국에 맞서고 있다. 중국은 올해도 이런 국가이익 논리를 표방하며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서 영유권 주장을 강화할 가능성이 크다. 지난달 중국 인민해방군은 미국 전역을 사정권에 두는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시험 발사했다. 5개월 전 첫 시험 발사에 이어 두 번째였다. 중국이 이런 기조를 이어간다면 일본, 동남아 주변국과의 갈등을 촉발하고 궁극적으로 미국과의 대결구도를 심화시킬 수밖에 없다.
양국은 경제 문제로도 승부하고 있다. 미국은 환태평양동반자협정(TPP)을 통해 대(對)중국 포위 구도를 형성하려 하고 있고, 중국은 역내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이라는 맞대응 카드를 준비 중이다.
미 백악관이 차기 주중 대사로 내정한 맥스 보커스 상원의원은 그동안 중국의 불공정한 무역 관행에 강경 대응해야 한다며 행정부를 압박해온 인물이다. 중국은 2003년 광우병 파동 이후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전면 금지한 바 있다. 이 때문에 양국은 시장개방 문제를 놓고 갈등과 협상을 반복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온다.
백민정 강창욱 기자 min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