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성장시대, 패러다임을 바꾸자-① 원인과 과제] “서비스 분야서 동력 찾아라”
입력 2014-01-02 02:27
“고성장은 멈췄고 이제 저성장이 트렌드다.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당분간 높게는 4%대, 낮게는 2%대에서 움직이는 사이클을 이어갈 것이다.”
한 경제연구기관장은 현재 한국 경제를 이렇게 진단했다. 성장률을 급격히 끌어올릴 만한 새로운 동력이 등장하지 않는 한 저성장기조가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가 앞장서 끌고 가며 규제와 통제를 통해 낭비 없이 성장해왔던 시대가 끝났다는 얘기로, 고성장 시대로 되돌아갈 수 있다는 꿈을 접고 저성장시대에 맞춰 생각의 틀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정부와 기업, 가계 등 경제주체들이 경제침체의 원인을 제대로 인식하고 대응하지 않는다면 정책이 더 나빠지는 방향으로 결정될 수 있다는 경고도 잊지 않았다.
◇저성장시대 도래 원인과 부작용=몇 년 전만 해도 저성장을 일시적 현상으로 보는 시각이 많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주력시장인 미국과 유럽 시장의 침체로 인한 단기적인 성장률 하락일 뿐 금세 극복할 수 있다는 생각이 많았다. 하지만 그 사이 우리 경제가 저성장 구조로 빠르게 진입했다는 측면은 간과하고 있었다.
경제전문가들은 성장률 저하를 생산 측면에서 찾고 있다. 주요 생산 함수인 노동, 자본(투자)의 저하가 저성장 시대를 견인한 주 원인이라는 것이다. 핵심 요인은 인구증가율 감소다. 경제활동인구 수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과거와 같은 고도성장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부동산시장 침체 역시 단기적 현상이 아니라 인구구조 변화에 따른 구조적이고 장기적인 현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LG경제연구원 이근태 연구위원은 1일 “성장 활력이 떨어진 것은 인구 증가율이 감소했기 때문”이라며 “2016년부터 생산가능인구가 본격적으로 감소하면 노동이 성장률에 기여하는 부분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자본 측면에선 지난 10년간 기업들의 평균 투자증가율이 1.7%로 낮아졌고, 특히 지난 3년간 마이너스였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오정근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1987년 정치민주화와 노동계 대항쟁 이후 88년부터 6년간 상승률이 연평균 20%에 이를 정도로 급등한 임금이 한국기업들의 해외탈출을 가속화시켰고,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실질적인 경제 규모도 축소됐다”며 “국내 투자가 줄면서 성장 동력도 급속히 약화됐다”고 분석했다.
배현기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소장은 “투자뿐 아니라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것이 쉽지 않다”며 “일시적으로 수요를 진작해서 경제성장률이 4%대를 찍더라도 이는 경기 사이클의 상단으로 볼 수 있어 과거 같은 고성장시대로 되돌리기는 힘들다”고 전망했다.
투자 감소로 정규직 일자리는 줄고, 비정규직 일자리가 크게 늘면서 고용구조의 불안정성도 심화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양극화다. 두 자릿수 성장기에는 모든 분야에 성장 기회가 있었지만 저성장기에는 성장과 소득개선이 선별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이 연구위원은 “3%대 성장이라는 것은 많은 분야에서 역성장이 나타나고 소득도 악화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경기 양극화가 지속될 수 있는 시대에 진입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어떻게 대비해야 하나=우려스러운 점은 저성장 국면이 다른 선진국에 비해 일찍 찾아온 점이다.
오 교수는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 수준일 때 다른 선진국은 성장률이 높았지만 우리나라는 성장률이 떨어지는 조로 현상을 보이고 있다”며 “현재의 성장 속도라면 10년 뒤에도 선진국 진입이 어렵다는 결론이 나온다”고 관측했다.
따라서 저성장을 극복하려면 정부가 해외로 나간 기업이 유턴할 수 있는 투자 환경을 조성해서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하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성장률 제고를 위한 노력보다는 질적인 성장과 함께 성장률이 잠재성장률 수준과 괴리되는 것을 방지하는 노력, 즉 지속가능한 성장체제를 만드는 것이 한국 경제의 급선무하고 말한다.
우선 정부와 기업은 선택과 집중 전략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이 연구위원은 “앞으로 성장 기회가 있는 분야는 의료, 관광, 교육, 금융 등 서비스 분야이며 풍부한 고급 인력을 활용할 수 있는 서비스 산업 육성이 어젠다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 교수도 “임금 기대수준이 높아진 만큼 고임금을 받으며 살아갈 수 있는 지식서비스산업에 대한 규제를 획기적으로 완화해 고급 서비스분야에서 신규투자가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정부는 건전재정 기조를 유지하면서 저성장 시대에 분출할 수 있는 갈등을 줄이기 위해 공정경쟁 질서 확립과 함께 사회안전망을 확충에 주력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가계 역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 배 소장은 “과거 부동산 가격이 급등할 때와 달리 저금리시대에는 자산을 통해 고수익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든다”며 “차입을 통해 이익을 실현했던 고성장기 가계의 일반적인 패턴은 상당부분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장희 기자 jh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