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예산안 처리] 현안 쫓겨 겉핥기 심사… ‘쪽지’ 구태에 SOC 삭감 등 불발

입력 2014-01-01 03:40

여야가 31일 벼랑 끝 합의를 이끌어내며 준예산 편성 사태는 막았지만 쪽지 예산 구태는 그치지 않았다. 정부는 2014년 예산안에 ‘경제활력·일자리 예산’이라는 이름을 붙이며 경제활성화의 마중물로 쓰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국회는 정치 현안에 쫓기며 충분한 심사 과정을 거치지 못해 입법부의 권한이자 의무인 예산 심사에 소홀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워졌다.

◇356조 규모, 공약 일부 축소=여야 합의안의 올해 총지출 규모는 정부안보다 1조9000억원 줄어든 355조8000억원으로 정해졌다. 이 가운데 복지 예산 비중이 105조원으로 가장 컸다. 기초노령연금 수혜 범위가 공약보다 줄어드는 등 복지 공약이 일부 축소됐다.

정부는 올해 경제성장률을 3.9%로 예상하면서 총수입을 지난해보다 0.5% 줄어든 370조7000억원으로 책정했다. 총지출 증가율을 5% 이하로 유지하는 긴축재정을 짰지만 총수입이 마이너스 성장을 하면서 관리재정수지는 -25조9000억원으로 2년 연속 적자예산이 편성됐다. 관리재정수지는 통합재정수지(총수입-총지출)에서 국민연금 등 사회보장성 기금의 흑자를 뺀 실질적인 재정 건전성 지표다. 임기 내 균형재정 달성 목표도 불가능해졌다. 정부는 내년 예산안과 함께 발표한 ‘2013∼2017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서 2017년 관리재정수지 목표치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0.4%로 제시했다.

복지 예산이 사상 최초로 100조원을 넘어섰지만 공약을 모두 지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대선 공약에서 후퇴한 대표적 분야는 복지와 교육이다. 우선 모든 65세 이상 노인에게 20만원을 지급하기로 한 기초연금 공약은 대상이 축소됐다. 기초생활보장제도를 통합급여에서 개별급여체계로 전환하는 시점도 당초 오는 7월에서 10월로 연기됐다. 대학생 반값 등록금 공약은 시행시기를 1년 늦췄다. 반값 등록금 실현을 위해서는 연간 1조원의 예산이 필요하지만 올해에는 절반 수준인 5300억원만 투입된다. 고교 무상교육 역시 올해 시행이 유보됐다. 세입 감소 영향으로 2015년 이후에 시행하되 새 정부 임기 내 완성을 목표로 추진키로 했다.

◇쪽지 난무에 SOC 삭감 실패= 정권 초부터 강조했던 사회간접자본(SOC) 예산 축소는 사실상 이뤄지지 않았다. 정부는 지난해 5월 공약가계부 발표 시 적정 SOC 규모를 연간 21조∼22조원으로 제시했다. 정부는 당정 협의 전까지도 지난 정부 시절 특수한 경제상황(경제위기, 4대강사업) 때문에 늘어난 SOC 투자는 정상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정부의 이런 의지는 지방선거를 의식한 여당 앞에서 무너졌다.

정부안 성안을 위한 당정 협의 과정에서 여당 의원들은 물밑 협상을 통해 지역구 SOC 예산을 대거 반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국회 예산 심의과정 막바지에 이르면서 예결위로 1000여건의 증액요구가 쏟아졌다. SOC 예산을 줄여 복지 등 다른 분야로 돌리겠다는 정부의 계획은 물거품이 됐다. 정부는 늘어난 SOC 예산을 국가기간망 철도와 도심부 교통 혼잡구간 도로 조기 완공에 주로 활용할 계획이다.

국정원 개혁입법과 부자증세 등 정치현안에 밀려 법정 심의기한을 넘기고 새해 직전에야 합의를 도출하는 구태도 여전했다. 여야는 치열한 줄다리기 끝에 쌀 목표가격은 종전 17만4083원에서 18만8000원으로 올렸다. 민주당은 이날 외국인투자촉진법을 처리해주는 대신 그동안 요구했던 학교 전기요금 지원비, 무상보육 국고보조율 추가 인상 등을 얻어냈다.

선정수 기자 js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