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개혁의 해] “자산 매각·복리후생 축소하라”… 공공기관 정상화 채찍질

입력 2014-01-01 01:33


정부가 31일 공공기관 개혁을 위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부채가 많은 기관에는 공공서비스 제공을 위한 필수 자산 외에 모든 자산 매각 검토를 지시했고, 방만 경영 개선을 위해 임직원 복리후생을 공무원 수준으로 낮추라고 하달했다. 정부의 개혁안은 정상화 계획 제출 시기를 놓고도 공공기관 간 경쟁을 유도하는 등 속도감 있게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사업 구조조정과 자산 매각의 졸속 추진, 공공기관 노조의 반발로 노·정 갈등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일고 있다.

◇공공기관 모든 프로세스 원점 재검토=기획재정부는 31일 공공기관운영위원회를 열어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 실행계획’과 ‘공공기관 부채 감축계획 및 방만 경영 정상화 운용지침’을 확정했다. 12월 13일 발표한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의 후속 가이드라인인 셈이다.

정부는 공공기관이 지난해 9월 제출한 중장기 재무관리 계획에 비해 부채 증가율을 30% 이상 감축한 새로운 재무관리 계획을 세우도록 지시했다. 이를 위해 모든 사업을 원점에서 전면 재검토하고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도 충당하지 못하는 경우 특단의 경비절감 대책을 내라고 강조했다. 특히 기관의 설립 목적과 연관성이 낮은 부대사업은 원칙적으로 구조조정할 것을 지시했다.

퇴직금과 교육비, 의료비 등 방만 경영 개선을 위해서는 공공기관 임직원의 복리후생을 공무원 수준으로 맞추라고 요구했다. 구체적으로 업무상 부상·사망 시에 산재보상 외의 퇴직금 가산 지급, 유족보상, 유자녀 학자금 지원을 금지토록 했고 자녀 학자금은 공무원 수준으로 하되 정부 지원 외 보육료 추가 지원은 불가하도록 했다. 가족에 대한 무상 건강검진과 의료비 지원을 금지하고 각종 경조사에 현금이나 상품권, 순금·전자제품 등 고가의 기념품을 지급하는 것도 막았다.

정부가 지정한 38개 중점관리 대상 공공기관들은 이 가이드라인에 맞춰 이달 말까지 부채감축 및 방만 경영 정상화 계획을 제출해야 한다.

정부는 이와 함께 해외 자원개발 분야를 시작으로 정보화, 중소기업, 고용·복지 등 4개 분야에 대한 기능 점검에 나서 석유공사, 가스공사 등이 개별로 추진해온 자원개발 업무가 대거 통폐합될 것으로 알려졌다.

◇제2의 철도파업 사태 부르나=정부의 공공기관 방만 경영 정상화 계획은 대부분 노사 간 단체협약을 개정해야 하는 문제이므로 개별 공공기관 노조의 강력한 반발이 예상된다. 노·정 관계가 극단적으로 악화된 상황이라 정부의 강공 드라이브가 지속될 경우 또 다른 파업 사태도 우려된다.

사업 구조조정에 따른 인력 감축, 인사이동 등은 근로조건과 직결되기 때문에 노조가 가장 강력하게 저항할 부분이다. 대규모 적자를 떠안고 영업이익으로 수지 개선이 어려운 사업들이 중단되거나 전면 재검토될 경우 해당 사업에 투입됐던 인력도 구조조정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

기재부는 “노조의 동의 없이 직원 채용, 전보, 구조조정 등이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도록 운영해서는 안 된다”고 지침에 명시했다. 각 기관에 설치된 고용안정위원회 등이 협의기관으로만 운영돼야 하고 구조조정에 관한 결정권을 가지면 안 된다는 점도 명확히 했다. 향후 인적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인식을 반영한 것이다. 공공기관이 구조조정에 돌입하고 대량 해고 국면이 전개되면 노조는 파업에 나설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정부는 공공기관 정상화 추진 과정에서 빚어지는 파업에 대해 기관장이 책임을 지지 않도록 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예전까지 공공기관 평가에서 노동쟁의가 발생할 경우 감점을 부여했던 것과 달라진 모습이다. 향후 정부가 파업을 감수하면서도 공공기관 구조조정을 관철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담은 것이다.

노조의 경영 간섭에 대해서도 선을 그었다. 전임자 외에는 근무시간에 노조 활동을 하지 못하도록 했고 노조가입 범위도 법에 따라 운영하도록 했고 불법쟁의에는 엄중 대응하도록 조치했다. 각종 복리후생이 대폭 삭감되는 것도 근로자 입장에선 달갑지 않다. 강공책을 선택한 정부에 대해 양대 노총 모두 물러서지 않겠다는 입장을 내비치고 있어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은 또 다른 갈등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세종=이성규 기자, 선정수 기자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