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사후 20년, 미래 20년] 혈맹 벗어나는 중국… 악화된 모습 보이지만 ‘기존 우호’ 유지될 듯
입력 2014-01-01 01:27
“김정은이 재작년 4월 집권한 이후 아직까지 중국을 방문조차 못하고 있는 것은 중·조(中朝·북중) 관계의 현주소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뤼차오(呂超) 랴오닝(遼寧) 사회과학원 남북한연구센터 소장은 지난 25일 “중·조 사이에는 김정은 집권 이후 냉담한 관계가 계속되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김정일 국방위원회 위원장 시절에는 양국 사이에 정치·군사·경제적으로 의사소통이 이뤄졌으나 지금은 제대로 안 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김일성 주석 때는 냉전시대라는 특성을 바탕으로 양국이 줄곧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지만 김정일이 권좌에 오른 뒤에는 ‘평화 발전 시기’로 서로 의견이 다른 경우도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렇지만 양국이 우호 협력이라는 틀을 벗어나지는 않았다고 봤다.
베이징 외교 소식통은 이에 대해 “김정일 때는 중국 입장에서 볼 때 북한 사회에 대한 해석이 가능했다”며 “지금은 이마저도 잘 안 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더욱이 김정은 집권에 이어 시진핑(習近平) 체제가 출범한 뒤에는 양국 관계가 악화되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여기에는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 3차 핵실험 등이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다. 중국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핵실험을 강행하자 중국 지도부는 북한에 대해 ‘골칫덩어리’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 중국이 유엔의 대북제재에 동참한 것도 이러한 배경에서였다.
중국 내 북한전문가 상당수는 김일성-김정일-김정은 체제로 이어지면서 ‘혈맹’으로 표현되던 북·중 간 전통적 우호 관계가 정상 국가 간 관계로 바뀌어가고 있다고 인식한다. 특히 김일성은 마오쩌둥(毛澤東) 저우언라이(周恩來) 등 중국공산당 혁명1세대와 동지적 교감이 있었던 데다 중국이 ‘항미원조(抗美援朝)전쟁’이라고 부르는 6·25전쟁 당시 양국이 서로 피를 나눔으로써 전우애까지 공유했다.
하지만 김일성이 사망하기 2년 전인 1992년에 이뤄진 한·중 수교는 북·중 관계를 그 전보다 소원하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 김정일 집권 시기인 2010년 3월 천안함 폭침과 2010년 11월 연평도 포격 도발 당시에는 중국이 아무런 사전 통보도 받지 못해 상당한 불만을 느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제 북한 지도자가 중국을 방문하더라도 과거처럼 중국 지도자와 뜨겁게 포옹하는 장면을 보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게 중국 내 북한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순망치한(脣亡齒寒·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 관계에 다소 변화가 오고 있다는 뜻이다.
이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북한과의 기존 우호 관계는 계속 유지할 것으로 보고 있다. 북한이 가진 지정학적인 중요성 때문이다. ‘중국은 북한을 버려야 한다’는 글을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에 기고한 뒤 중앙당교 기관지 학습시보의 부편집장 자리에서 쫓겨난 덩위원은 “북한이 지금 같은 행보를 보이는 데는 중국의 역사적 책임도 있다”며 “북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나라는 중국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베이징=정원교 특파원 wkch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