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임만호 (6) 고향서 보낸 장학금 거절에 “훌륭한 고집쟁이군”
입력 2014-01-01 01:30
1967년 7월 군에서 제대하고 68년 숭실대 경영학과 4학년에 복학했다. 당시 농촌경제의 열악한 구조상 자녀를 서울로 유학 보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부모님도 집에서 기르던 돼지와 닭을 팔아 입학금을 마련해주셨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것은 61년 대학 입학 당시 홍정길 남서울은혜교회 원로목사님의 부친인 홍순호 장로님이 보내주신 편지다. 어느 날 기숙사로 등기우편이 왔다.
‘만호의 대학 입학을 축하한다. 우리 정길이와 같이 기독교 대학인 숭실대를 다니게 되어 기쁘구나. 많은 돈은 아니지만 한 학기에 3만원씩 장학금을 보내주려 한다. 우선 1만원을 우편환으로 보낸다. 신앙생활 잘하고 공부도 열심히 하거라. 이만 줄인다.’ 편지 안에는 1만원짜리 우편환이 들어 있었다. 당시 1학기 등록금이 8만원, 1개월 기숙사비는 6000원가량 하던 시절이다.
하늘을 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나님께서 나의 어려움을 아시고 홍 장로님을 통해 도와주셨다는 생각이 들어 감사 기도를 드렸다. 다음날 우체국에 가기로 하고 들뜬 마음을 달래며 잠을 청했다.
그런데 잠결에 고향에 계신 아버지가 나타나셨다. 아버지는 늘 “대인관계에서 덕을 많이 보면 평생 짐이 될 수 있다. 어떻게든 자기 일은 자신의 힘으로 처리해야 한다”고 말씀하시곤 했다. 갑자기 잠에서 번쩍 깼다. “자기 일은 자신의 힘으로 해내야 한다.” 아버지의 말씀이 또렷하게 울렸다.
‘그래, 내가 존경하는 홍 장로님은 동네에서 부자이시지만 지역의 미자립 교회를 많이 도우시면서 고아원까지 운영하시니 쓰셔야 할 돈이 많을 것이다. 당장 내 형편이 어렵긴 하지만 부모님이 계시고 내 힘으로 몇 푼이나마 벌 수 있으니 사양하는 게 맞는 것 같다.’ 그날 밤 홍 장로님께 보낼 편지를 써내려갔다.
‘큰돈을 장학금으로 보내주신 것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돈을 받고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고향에 부모님도 계시고 제 힘으로 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함평 자광원에는 부모도 없는 불쌍한 아이들이 많습니다. 죄송하지만 이 돈을 원생들을 위해 써주신다면 더 좋을 듯싶어 다시 보내드립니다. 저의 당돌한 행동을 용서하시고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지금 생각해도 당돌한 편지가 아닐 수 없다. 그날로 편지에 우편환을 넣어 영등포우체국에서 발송했다. 훗날 다른 분을 통해 홍 장로님의 이야기를 들었는데 ‘만호란 녀석이 훌륭한 고집쟁이더라’는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공부를 하면서 학비를 번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방학 때면 서울 신당동 건축 현장에서 잡부로 일했고 오전 4시에 일어나 노량진에서 학습지 돌리는 일도 했다. 근로장학생으로 얼마의 장학금을 받기도 했다.
68년 11월 미림목재라는 회사에 경리직원으로 입사했다. 당시는 경제 사정이 좋지 않아 일자리가 귀하던 시절이었다. 졸업도 하기 전에 취직을 했으니 고향집에서 무척 대견해 하셨다. 69년 6월쯤 고향에서 아버님으로부터 편지가 왔다. ‘나이도 서른이 다 돼 가는데 좋은 혼처가 있으니 속히 내려와서 맞선을 보라’는 것이었다. 마침 대학도 졸업하고 직장도 있으니 결혼이 늦어지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함평읍에 사시는 고모님께서 중매를 섰다고 했다. 휴가를 얻어 함평 고모님 댁으로 향했다.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