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연주하는 ‘꼬마 밴드’… 꿈을 향해 높이 날아라
입력 2014-01-01 01:49
해남 땅끝마을 지역아동센터 아이들의 새해 소망
지난달 22일 오후 전남 해남군 현산남부그리스도의교회. 장난기 가득한 어린이들이 기타와 건반, 드럼 반주에 맞춰 캐럴 ‘창밖을 보라’를 신나게 부르고 있었다. 늦게 온 어린이들도 들어서자마자 바로 연습에 참여했다. 하나같이 얼굴에는 웃음꽃이 가득했다.
“워낙 시골이라 즐길 만한 문화가 별로 없어요. 어린이들이 할일 없이 읍내에 나가 시간을 보내기 십상이지요. 그런 아이들에게 꿈을 만들어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밴드’입니다. 지역아동센터에 다니는 어린이들이 기타와 건반 등을 틈틈이 배워 예배시간에 반주를 하는 기쁨을 누리고 있지요. 얼마 전엔 해남군이 주최한 ‘록 페스티벌’에 나가 입상해 잔치를 벌이기도 했답니다.”
이 교회 담임 김석(40) 목사가 밴드를 만들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2011년 5월 첫발을 떼 이제 2년7개월 남짓한 밴드에는 초등학생부터 중학생까지 연령층과 사연이 다양하다. 올해 초엔 2기 밴드 팀도 만들었다.
어린이들은 성탄예배 특송 연습에 한창이었다. 매주 일요일 정기연습에 보통 2∼3시간씩 땀을 흘린다. 어린이들은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를 때 서로 호흡을 맞추면서 친구들 간 우정이 절로 커진다고 말했다.
기타를 치는 김진명(13·중1)군은 “로봇을 만드는 과학자가 되고 싶은데, 악기를 연주하면 또 음악가가 되고 싶어요”라며 살짝 웃었다. 그는 그러나 뭐가 돼야 될지는 하나님께 기도로 여쭤보고 있다고 대답했다. 새해엔 좋은 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공부를 열심히 할 것이고 한 살 아래 남동생과 싸우지 않고 사이좋게 지내며 무엇보다 부모님이 편찮으시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다고 제법 어른스럽게 말했다.
중학교 1학년과 초등학교 4학년인 또 다른 형제는 한부모 가정에서 힘들게 생활하지면 악기를 배우며 활기를 되찾은 사례다. 제대로 된 식사를 챙겨먹기 힘들 정도로 가난하지만 교회학교에 나오면서 성격도 점차 바뀌었다. 늘 그늘졌고 소극적이었으나 점차 밝아지면서 학교생활에도 잘 적응하고 있다. 교회 밴드에서는 기타를 치며 팀을 리드한다.
어린이들은 쉬는 시간에 간식을 먹으면서 꿈과 새해 소망을 이야기했다. 빵이 맛있어 제빵사가 돼서 보육원에 빵을 많이 보내겠다는 초등학교 6학년 여학생의 말은 쌀쌀한 겨울날씨에 드러난 햇살처럼 모두를 따뜻하게 했다. 노래 잘하는 가수가 되어 어머니 마사지 기계를 사 드리겠다는 초등학교 4학년 효녀도 있었다. 대부분 새해 부모님 말씀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하겠다는 작은 소망이 주를 이뤘다. 성경 말씀을 열심히 외어 하나님 말씀으로 전신갑주를 입겠다는 믿음 좋은 중학생도 있었다.
이 교회는 노인 20여명과 지역아동센터 어린이 40여명이 출석하는 전형적인 농촌 미자립 교회다. 면소재지에서 8㎞ 정도 떨어져 시골에서도 외곽이다.
“부모가 이혼했거나 생활고로 시골에 남겨진 어린이들이 많아요. 방과후 공부를 하고 노래도 하며 즐겁게 뛰노는 모습을 보면 참 보기 좋은데…. 천진하고 순수한 어린이들을 보면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장로회호남신학대와 호서대 연합신학대학원을 졸업한 김 목사는 “고향에서 목회를 하게 된 것을 하나님께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직접 키운 배추나 고구마 상추 오이 쌀 등을 들고 찾아오는 성도들을 통해 도시교회에서는 느낄 수 없는 진한 순박함을 경험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고향에서 목회를 하게 된 계기에 대해 귀띔했다.
“초등학교 2학년 어릴 때부터 이곳 해남에서 교회를 다녔어요. 헌데 아 글쎄, 담임목사님들이 2년도 안돼 도시로 훌쩍 떠나시는 거예요. 어린 마음에 너무 자주 바뀌어서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몰라요. 내가 목사가 되면 시골에서 오래 목회를 해 나같이 상처받는 어린이들이 없게 해야지 하며 목사가 되겠다는 서원기도를 드린 기억이 납니다. 이 계획은 목사 안수를 받으면서 더 구체화됐고요.”
김 목사는 농촌목회 10년차다. 도시에서 청빙이 있었으나 하나님께 서원 기도한 것이 있어 농촌목회를 계속하고 있다. 건강한 교회를 만들고 지역아동센터를 계속 운영해 지역을 복음화하는 것이 소원이다. 마을에서 우상숭배가 사라지고 그리스도의 향기나 넘쳐나길 소망한다. 늘 아이들에게 “너희들은 지금은 도움을 받고 있지만 반드시 실력을 쌓아서 도움을 주는 사람이 돼라”며 비전을 심어주고 있다.
하지만 젊은 목회자의 당찬 소망에도 불구하고 시골 교회를 운영하기엔 힘이 벅차다. 50년 넘은 예배당은 비가 오면 교회 안에 쓰레기통을 받쳐 놓아야 한다. 천장에서 비가 새기 때문이다. 수리를 해도 비가 또 새고 예배당 벽 구멍에 시멘트를 발라도 또 떨어지기 일쑤다.
하지만 교회는 이런 예배당을 재건축하지 않고 있다. 대신 2009년 11월 무료 지역아동센터를 설립했다. 농촌 지역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어린이 돌봄과 무료 급식이 우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성도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은 1000만원 정도의 건축비도 모두 어린이들을 위해 썼다.
교인들은 “교회는 힘들어도 아이들을 돌봐야 하고 이 일로 지역사회에 복음이 전파되기 원한다”는 합심 기도를 드리고 있다. 사회복지사 교사들은 자비량으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어린이들을 지도하고 있다. 50㎞를 통근하는 교사도 있고 돈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후원금을 내면서 자원봉사하는 교사도 있다.
“목회 초기엔 어린이들의 인성이 좋아지길 바랐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더 이상 나빠지지 않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농촌경제가 어려워지다 보니 정서가 더 메말라가는 것 같아요. 큰 욕심은 없고요. 비뚤어지는 어린이 없이 잘 자라만 준다면 더 바랄 것이 없을 것 같아요.”
성도들은 하루빨리 비가 새는 예배당이 다시 건축될 수 있도록 릴레이 기도 중이다. 김 목사는 “교회에 돈이 없어 자체 건축이 어려운 실정”이라며 “농촌 선교와 복지를 위해 한국교회가 기도와 관심을 보여 달라”고 말했다.
인터뷰 말미에 김 목사는 갑자기 농촌교회를 위해 쓴소리를 했다.
“농촌교회는 아직 순수한 정(情), 즉 사랑이 있습니다. 한 영혼을 귀히 여기는 마음도 있습니다. 하지만 농촌교회도 이제 세상문화가 들어와 영혼이 피폐해지고, 이기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농촌교회가 다시금 성도들과 사랑, 나눔을 통한 가족공동체를 회복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한국교회에 빛과 소금의 사명이 이루어져 갈 것입니다.”
해남= 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