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이만우] 서민생활 안정이 먼저다

입력 2014-01-01 01:31


60년 주기를 일곱 번 돌아 올해로 7주갑(周甲)인 1594년 갑오년은 임진왜란 한복판에서 온 나라가 피폐했다. 비가 퍼붓듯 내린 정월 초하루 이순신 장군은 “어머님을 모시고 함께 한 살을 더하게 되니 난리 중에도 다행이다”는 난중일기를 남겼다. 연로한 부모님을 모시는 모든 사람이 옷깃을 여미고 효(孝)의 도리를 다시 새길 교훈이다.

노인 인구가 점점 늘고 있다. 자녀와 함께 지내는 경우도 있지만 노부부가 따로 살거나 홀로 지내는 독거노인도 많다. 재력 없는 노인이 포함된 가구는 생활이 더욱 어렵다. 기초연금으로 생계를 지원하려는 정부 계획도 재정 적자로 난관에 봉착했다. 대기업 수출 증가로 인한 수치상 경제성장률과는 별개로 서민경제 침체와 생활의 궁핍은 심각하다.

기획재정부 조사에 의하면 가장 시급한 경제정책 과제로 일반 국민 54.1%는 ‘서민생활 안정’을 들었다. 경제 전문가 58.1%가 ‘성장잠재력 확충’을 택한 것과 대비하면 일반 국민의 불안감이 심각함을 엿볼 수 있다. 정치권과 일부 시민단체가 목청을 높이는 ‘경제민주화’는 일반 국민 7.4%와 전문가 10.3%만 공감했다.

서민경제 침체는 가계부채 폭증으로 이어진다. 이미 1000조원을 돌파한 가계부채는 한국경제의 최대 위험요인이다. 청년실업 악화로 결혼은 늦어지고 출산율도 세계 최저 수준이다. 실업 사태와 자영업 실패에 따른 가정경제 파탄으로 인한 이혼도 심각하다. 조부모가 손자·손녀를 맡아 키우는 조손가정이 도시나 농어촌 가릴 것 없이 늘고 있다.

조손가정 아동은 자존감이 낮고 학교생활 적응도 어려우며 사회적 낙인감에 따른 우울증도 관찰된다. 조부모의 경우 양육 스트레스로 신체적 건강도 나빠지고 생활만족도도 크게 저하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정부 지원으로 영구임대아파트에 입주한 조부모의 경우 생활만족도가 크게 개선됐다. 조손가정에 대한 정부의 세심한 지원이 절실한 이유다.

노인과 장애인 등 취약가구는 사회복지 차원에서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 노동 능력이 있는 가구의 경우 일자리 창출과 자영업 창업 지원으로 도와야 한다. 고금리 가계부채에 대한 세심한 배려도 필요하다. 그러나 재원 마련을 위한 세금 인상은 한계가 있고 지하경제 양성화를 통한 세수증대 효과도 제한적이다. 중앙 및 지방 정부와 공공기관을 포함한 공공부문 개혁을 통해 예산을 절감, 복지 재원을 확충해야 한다.

취약계층 가계부채 해소를 위한 미소금융 재원 활용 방안도 검토돼야 한다. 금융회사 휴면계좌와 대기업 기부금을 계속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이명박정부에서 조성됐던 미소금융 자금이 어떻게 흘러갔는지를 조사해 회수 활동을 강화해야 한다. 미소금융에 출연한 금융회사나 대기업은 법인세에서 공제받고 회계장부에서 떨어냈지만 출연받은 미소금융의 공익자금은 정상적으로 관리돼야 한다. 비정상적으로 어물쩍 넘길 일이 아니다.

서민경제의 어둠을 밝힐 등대는 양질의 일자리다. 국제경쟁력을 갖춘 대기업이 현금보따리를 풀고 투자에 매진해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 정부도 기업의 발목을 잡는 규제를 과감히 혁파하고 대통령이 앞장서는 세일즈 외교를 강화해야 한다. 과거의 비정상적 경영관행 때문에 오랫동안 형사재판을 받고 있는 SK 최태원 회장과 한화 김승연 회장 등 기업인에 대해서도 법원의 선처가 절실하다.

횡령과 배임 추궁을 받은 금액을 이미 반환 또는 공탁했고, 진정으로 반성하고 있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수많은 사업을 영위하는 와중에 극히 일부분에서 발생된 문제여서 당시에는 모두 알 수 없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도 오직 법의 잣대만을 기준으로 사법처리한 것은 생각해 볼 문제다. 기업인의 심기일전에 의한 과감한 투자는 양질의 일자리로 이어져 서민경제를 살리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이만우 고려대 경영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