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파업 22일 만에 철회] 철도파업, 원칙과 여론에 졌다

입력 2013-12-31 01:52

전국철도노동조합의 ‘수서발 KTX 민영화 반대’ 파업이 30일 막을 내렸다. 노조는 파업 초기 ‘민영화 금지법’을 요구하는 등 강경 투쟁을 예고했으나 막판 ‘국회 철도산업발전소위 구성’이라는 작은 명분만 얻고 파업을 접었다. 법과 원칙을 강조한 정부의 한결같은 태도가 결국 노조를 무릎 꿇게 했다는 평가다. 방만한 공기업을 향한 국민적인 개혁 요구와 파업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날로 커진 점도 노조에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겉으로는 철도노조가 파업을 철회하는 모양새지만 실질적으로 정부가 파업을 종식시켰다고 볼 수 있다. 정부는 수서발 KTX 법인 설립이 민영화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며 시종일관 대화할 사안이 아니라는 입장을 지켰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3일 “원칙 없이 적당히 타협하고 넘어간다면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이처럼 정부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자 노조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노조는 파업 초기인 지난 13일까지만 해도 요구안에 대한 답변 시한을 제시하며 사측을 압박했다. 하지만 파업 동력이 떨어진 27일에는 오히려 사측으로부터 밤 12시까지 복귀하라는 최후통첩을 받았다. 요구사항도 ‘민영화 금지법’ 제정에서 ‘수서발 KTX 법인 면허 발급 중단’, ‘사회적 논의 기구 구성’ 등으로 점차 수준이 낮아졌다. 명분만 주어지면 언제든 파업을 풀 기세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합원의 업무 복귀율이 높아진 것도 노조 지도부로 하여금 ‘백기투항’을 결정하게 한 이유다. 특히 과거 파업이 끝난 지점인 ‘복귀율 30%’가 가까워지면서 지도부의 초조함이 커진 것으로 보인다. 대체인력 선발과 대량해고 예고 등 정부의 초강경 대응이 효과를 거뒀다는 분석이다.

무엇보다 그동안 감춰져 있던 한국철도공사(코레일)의 방만 경영이 파업으로 인해 속속들이 알려진 게 노조에는 치명적이었다. 초기에는 2009년 파업 때와 달리 여론이 나쁘지 않았다. 때마침 불어닥친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 열풍과 민영화 혐오 분위기 조성 등에 힘을 입었다.

그러나 코레일의 17조6000억원대에 달하는 엄청난 부채 등 경영 실태가 부각되면서 공기업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에 힘이 붙었다. 여기에 열차운행 감축으로 인한 불편이 날로 커지자 파업에 짜증을 느끼는 여론이 늘었다. 노조 입장에서 해를 넘겨 파업을 지속했을 때 국민의 지지를 장담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노조는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의 철도산업발전소위 구성이라는 결과물을 얻었지만 국회의원 8명으로 구성된 소위가 정부 철도정책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는 불투명하다. 정부는 이미 사흘 전 수서발 KTX 법인에 대한 면허를 발급했다. 여야 합의로 민영화 금지를 법제화할 가능성은 희박하므로 수서발 KTX는 정부안대로 추진이 확실시된다. 특히 노사가 아닌 노조와 정치권의 합의라는 점에서 실효성이 떨어져 파업이 재발될 가능성이 여전하다는 관측도 있다.

노조는 “민영화에 대한 국민의 경각심이 높아졌을 것”이라고 애써 자평하고 있다. 하지만 역대 최장 22일간의 파업이 남긴 것은 철도노조에 대한 국민적 불신과 대규모 지도부 징계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권기석 기자 key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