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가 최태훈, 中 정저우에 공공미술품 ‘부케’ 설치

입력 2013-12-31 01:27


차가운 쇠를 지지고 뚫어 그 속에 생명력을 불어넣다

“우와∼슈아이!(멋지다!)”

지난 28일 오후 5시 중국 허난성(河南省)의 수도 정저우(鄭州)시내 중심에 위치한 30층짜리 복합건물 슈허(蘇荷)센터. 어둠이 깔리고 건물에 조명이 들어오자 분수대 광장 가운데에 설치된 한국 조각가 최태훈(48)의 ‘부케(盛放)’ 작품이 환하게 빛났다. 높이 12m의 작품 위에 달린 꽃 모형들이 건물조명을 받아 활짝 피어나는 모습을 드러내자 이곳에 몰려든 사람들이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3500년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정저우는 중국 대륙의 중원으로 주(周)나라 때부터 문물이 발달했으며 세계문화유산인 소림사 등 유적도 즐비하다. 이곳에 기반을 두면서 식음료와 부동산 등 사업을 벌이는 중국 50대 기업 중 하나인 ‘센트럴 랜드(中部大觀地産)’가 슈허센터 오픈과 함께 이날 공공미술품 ‘부케’의 개막식을 가졌다. 건물 1층 슈허아트센터에는 최 작가의 작품 10여점이 전시됐다.

중국 기업이 한국 작가의 작품을 공공미술품으로 설치하고 공식행사를 갖기는 처음이다. 개막식에는 한진섭 한국조각가협회장, 최태만 국민대 교수, 백동민 미술잡지 ‘퍼블릭 아트’ 대표, 이대형 현대자동차 아트디렉터, 중국 예술가 등 200여명이 참가했다. 최태훈 작가는 “꽃이 만발한 공공조형물 ‘부케’를 통해 정저우가 예술도시로 한 걸음 발돋움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중국에서 공공미술은 아직 생소한 단어다. 슈허센터는 위에서 내려다보면 네 개의 잎이 달린 꽃 모양을 하고 있다. 센트럴 랜드가 이 건물을 지으면서 ‘예술이 있는 공간’으로 조성하기 위해 공공미술을 도입키로 했다. 국내외 유명 조각가들을 섭외한 끝에 최 작가의 꽃 모양 작품 ‘부케’를 선정한 것이다. 건물의 꽃 모양과 닮은 데다 스테인리스 스틸에 생명력을 불어넣은 작품이 현대식 건물과 잘 어우러진다는 이유였다.

차가운 쇠를 지지고 뚫어 그 속에 희망의 빛을 삽입하는 플라스마(plasma) 기법으로 작업하는 최 작가의 작품은 인공물에 감정을 불어넣는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서울 을지로에 거인 형상의 ‘아틀라스’, 양재동 서울가정법원에 피라미드를 거꾸로 세운 형태의 ‘감성의 시간’ 등 곳곳에 그의 작품이 설치돼 있다. 흑백 위주인 기존 작품과 달리 이번 ‘부케’ 작품은 화사한 색깔의 꽃잎으로 사랑과 행복의 이미지를 강조했다.

작가는 3개월 넘게 중국에서 지내면서 재료와 인력을 모두 현지 조달했다. 한국에서 만들어 중국으로 운반하기가 쉽지도 않았지만 중국인들의 마음에 더욱 다가가기 위해서였다. 당초 제시받은 작품 높이는 8m이었다. 하지만 높이 70m의 슈허센터에 비해 너무 초라해 보일 것 같아 12m로 높였다. 제작비(2억원가량)는 이미 동이 나고, 작품을 제대로 만들기 위해 자비를 들이는 등 출혈을 감수해야 했다.

‘부케’ 작품 개막식에 앞서 ‘공공예술이 도시와 생활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제목으로 한·중공공예술세미나가 열렸다. 왕시셩 슈허아트센터 대표는 “유구한 역사를 지닌 정저우에 첨단 건물과 함께 공공조형물이 들어서 전통과 현대가 조화를 이루는 예술적인 도시공간으로 탈바꿈했다”며 “시민들도 작품을 보고 매우 즐거워한다. 이를 계기로 중국 전역에 공공미술이 확산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정저우=글·사진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