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목화’ 30돌 기념무대 준비하는 연출가 오태석씨

입력 2013-12-31 01:29


“왜 무거운 작품 올리냐고? 근원적 질문 채워가는 느낌 배꼽티 입는 애들도 좋아해”

극단 목화가 창단 30주년을 맞았다. 실력파 배우들의 산실이자 명실상부한 동인제 극단(단원들이 극단에 대해 같은 권리와 의무를 지는 방식으로 운영되는 극단)으로 한국 연극의 자존심을 지켜온 목화는 연출자 오태석(73)을 빼놓고 말할 수 없다. 지난 27일 서울 대학로의 사무실에서 30주년 기념 공연을 준비하고 있는 그를 만났다.

그는 1960년대부터 한국의 전통 요소에 현재의 의미와 미학적 관점을 접목해 60여 편의 작품을 선보였다. ‘태’(1974) ‘춘풍의 처’(1976) ‘심청이는 왜 두 번 인당수에 몸을 던졌는가’(1990)를 비롯해 2011년 영국 공연 당시 호평을 받았던 ‘템페스트’까지 대표작이 수두룩하다.

그런 그가 30주년 기념 첫 무대로 택한 것은 ‘자전거’다. 윤 서기가 동료 구 서기에게 결근계 제출을 부탁하면서 그동안 있었던 일을 회상하는 형식의 연극이다. 1950년 6·25전쟁 때 충남 서천의 한 등기소에서 일어난 방화사건과 30년 뒤 나병환자들이 저지른 방화사건을 두 축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왜 이 작품을 택했을까. 그는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때 우리도 곧 무너지겠구나, 5년이면 (통일이) 되겠구나 생각했는데 지금도 이렇게 싸우고 있다”며 “이데올로기 때문에, 나병이라는 천형 때문에 헤어지고 격리된 삶을 보면서 관객들이 이제는 이런 되풀이를 끝내면 안 될까 생각해보면 좋겠다”고 설명했다.

1983년 초연된 작품으로 84년 목화 창단 이후에는 87년 처음 공연했다. 17년 후인 2004년에 이어 세 번째로 다음 달 5일부터 한 달간 대학로 스타시티 예술공간 SM에서 무대를 올린다. 요즘 대학로는 젊은 관객들을 타깃으로, 가볍게 웃으며 볼 수 있는 연극이 대세다. 아무래도 젊은 관객들에겐 이 작품이 너무 무겁고 어렵지 않을까.

그는 지난 6월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공연한 ‘소리극 아리랑’과 9월 국립중앙박물관 내 극장 용에서 ‘음악극 봄봄’을 무대에 올렸던 경험을 예로 들어 설명했다. ‘소리극 아리랑’은 ‘봉오동 전투’의 영웅 홍범도 장군이 말년에 수위로 지내던 카자흐스탄의 고려극장을 배경으로, 홍 장군의 유해가 고국에 돌아오는 과정을 아리랑 가락을 통해 풀어냈다. 또 ‘음악극 봄봄’은 김유정의 소설 ‘봄봄’을 음악극으로 풀어 일제강점기 농촌의 시대상과 함께 한국적 해학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그는 “이른바 배꼽티 입는 젊은 애들, 중·고교 학생들도 재미있게 보더라”면서 “그들에게서 텔레비전 등 그 무엇으로도 채우지 못하는 결핍을 봤다”고 했다. 학생이 공부 안 하고 며칠 지나면 불안한 것처럼, 우리 역사에 대해, 나는 어디에서 왔고, 왜 우리 어른들은 매일 싸우는지에 대해 누구나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고 생각하게 돼 있는데 그걸 채우지 못해 생긴 결핍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런 관객들이 연극을 보면서 자기만의 방에 역사의식 같은 걸 벽돌을 쌓듯 차곡차곡 채워가는 모습을 발견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평소 작품에서 과감한 생략과 비약을 선보인다. 관객들이 자기 나름대로 생각하고 감상할 기회를 제공하며 ‘관객을 믿는 연출’을 해왔다. 그는 “지금도 항상 관객들이 연극의 6할, 7할을 한다고 생각한다”며 “평소에 안 쓰던 머리를 써서 생각하게 해주는데, 이렇게 친절한 연극이 어디 있나”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화통하면서도 어린애 같은 웃음에서 대가의 자부심이랄까, 그런 게 느껴졌다.

1960년 극단 실험극장을 필두로 연극계를 이끌어왔던 동인제 극단 중 명맥을 제대로 이어가는 곳은 많지 않다. 현재 목화는 20대 후반부터 30대 초반까지의 젊은 배우 20명과 고정 스태프 12명이 꾸려간다. 유해진 손병호 박희순 정은표 장영남 등 영화계의 주연급으로 성장한 실력파 배우들이 모두 이곳 출신이다.

“우리는 지금도 매일 오후 2시부터 10시까지 모여서 연습을 해요. 연습실 청소하고, 몸 풀고 5000원짜리 밥 먹고, 밤늦게까지 연습하고…. 지금 (스타가 된) 애들 불러서 이렇게 붙잡아놓고 연습시키면서 공연할 수 있을까? 내가 그 애들 다 불러서 연극을 하려면 100억원은 있어야 할 거요.”

추운 겨울에도 늘 배우들에게 맨발로 무대에 서도록 하고, 직접 호통치고 가르치는 그의 ‘혹독한’ 연출방식은 유명하다.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인간의 감정, 인간이 낼 수 있는 소리만 갖고 연극을 하는 건 똑같아요. 연극을 인생의 축약이라고 하는데, 연극을 하려면 지식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배우의 긴 숨이 필요해요. 우리말이 정말 아름다운데 이걸 유지할 수 있는 건 글자도, 레코드도 아니에요. 바로 배우의 숨소리거든요. 앞으로도 그걸로 고운 우리말을 유지하고,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요.” 그의 열정과 원칙, 그리고 1년 365일 하루도 빼먹지 않는 단원들의 연습이 하나로 뭉쳐 서른 살 목화의 힘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